안장자 상세 내용


성명

강민호


민주화운동내용

노동민주화 운동


사망일자

1990년 04월 04일


나이

24세


직업

대학생


관련자인정

2002/06/12 (44차)


민주화운동 내용

1. 약력

1966년 2월 16일 전북 출생

1985년 3월 한신대 경영학과 입학

1986년 10월 건국대 점거농성 사건으로 구속, 집행유예로 석방1987년 12월 구로구청 부정개표 사건으로 2년 선고

1988년 10월 특별사면으로 석방, 복학

1990년 3월 대붕전선 입사

1990년 4월 4일 야간작업 중 기계에 휘말려 사망

1990년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 안장

2. 민주화운동 내용

한신대학 시절 강민호는 모범적인 생활 태도를 견지하여 많은 동료와 후배들에게 신뢰와 존경을 받아왔다. 강민호는 이 땅의 구체적 현실에 눈을 뜨게 되면서 민주화 운동에 헌신적으로 앞장서 왔으며 구로구청 부정선거 항의 점거농성 사건에서 최후의 순간까지 투쟁하다 2년형을 선고받기도 했다.


그는 노동자에 대한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어서 대학졸업장을 거부하고 노동자의 삶을 자기의 삶으로서 받아들이기로 작정하고 노동현장으로 뛰어들었다. 그가 다니던 공장은 약 150여명의 노동자가 일하는 대붕전선이라는 회사로서 12시간 주야 맞교대 근무제로서 장시간 노동의 열악한 근로조건을 지니고 있었다. 강민호는 입사한지 7일째 되던 날 야간작업을 하다가 연신기 주위에 있는 폐선을 치우기 위하여 1.5미터 되는 연신기 기계 사이의 통로를 지나다가 메고 있던 폐선이 회전하는 연신기에 휘말리면서 몸도 따라 들어가 비명 소리도 제대로 지르지 못하고 사망하였다.

3. 열사 관련 기록

“80년대, 정말로 파란만장 했던 10년이었다.

수천의 광주 영령들의 피로 시작된 80년대는 87년 민주항쟁 등을 거치면서 국민들의 미국에 대한 인식과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이 그 어느 때 보다도 드높았던 시기였다. 수천의 민주동지와 수천의 영령의 피로 얼룩진 지난 10년간의 역사를 반만년 유구한 역사의 어느 시기보다 가장 뜨거웠고 가장 격동에 찬 10년이었다.

80년대의 가운데인, 1985년 나는 ‘삶이란 무엇인지’, ‘세계를 어떻게 볼 것인지’를 고민하기 시작했고, ‘운동’이라는 것에 대해 눈을 뜨기 시작하여 5년여 간 정말 치열하게 고민하고 보람되게 살아왔다. 그 이전의 20년 훨씬 이상으로 뜻 깊게 살아 움직이며 격동하는 삶을 살아왔다고 확신한다.

아무것도 모르고 대학에 대한 막연한 기대와 낭만에 부풀어 첫 문을 통과한지 5년, 이제 나는 5년 전의 기대와 희망에 마냥 들떠있던 내가 아니다. 기대와 희망은 같을지 몰라도 그 내용은 엄청난 질적 진보, 아니 혁명이라 할 수 있는 변화를 가져왔다. 4년, 아니 5년간의 남과는 좀 다른 기간의 활동을 한 나에게 지금 이 순간은 새로운 각오를 하게 하는 뜻 깊은 시간이다.

5년간의 활동을 마감, 정리하고 새롭게 다가 올 공간을 생각하며 내가 할 일들을 준비한다.

지금까지 내가 살았던 삶과는 다른 것이다. 아니 너무나 다를 것이다. 기대와 희망에 부풀어 있지만 아직 경험하지 못한 것이기에 약간의 두려움이 존재하는 것 또한 사실이다. 그러나 그 곳은 뭐 대단한 것을 하는 곳이 아니라, 앞으로 평생을 살아 갈 나의 삶터이고, 살아 갈 장소이다.

나는 평생을 노동자로서 개척하며 살아 갈 것이다. 역사의 진보적 계급인 노동자로서, 선배동지에게 부끄럽지 않은 자랑스러운 노동자로서 한평생을 후회 없이 살아 갈 것이다.

지금 이 순간 나에게는 수많은 생각들이 머리를 스쳐 지나간다. 지난 시기 나약했고, 우왕좌왕했던 나의 사고들을 다시 정리하고 대망의 90년대를 힘차게 맞이하기 위해 나는 이 순간 준비한다.

지난날의 모든 나약함을 과감히 버리고, 민중사회를 위해 한 치의 물러섬도 없이, 한 치의 후회도 없이 오로지 앞만을 향해 전진할 것을 가슴속 깊은 곳에서부터 결의한다.

한평생 후회 없이 싸우다 가련다. 우리를 억압하는 모든 반동의 무리들을 처단하는 투쟁의 최전선에 서서 싸우다 자랑스럽게 가련다. 우리가 승리하여 해방된 사회를 본다면, 서로의 손을 잡고 조국해방 만세를 힘차게 부를 것이다.

그 날이, 해방된 그 날이 멀지 않아 우리에게 오리라는 것을 확신하며 힘차게 싸워 나가자!!!

격동의 80년대를 정리하고 대망의 90년대를 맞이하는 새해의 순간에서…“

- 1990년 새해를 맞이하여 쓴 글-


“부모님 보십시오.

그동안 안녕하셨는지요.

이제는 완전히 화창한 봄이 왔습니다.

그 길고도 쌀쌀하던 겨울도 결국 자연의 섭리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이 물러가고 모든 사람들에게 희망과 용기를 불러 넣어주는 봄에 의해 압도당하고 말았습니다. 우리들 모두의 염원이며 희망인 민주사회를 자랑스럽고 조화롭게 모든 인간의 의지를 담고 굴러가는 거대한 역사의 수레바퀴를 자기들의 부귀와 영화를 위해 막는 무리들도 결국은 겨울이 봄에 의해 대체되는 것이 자연의 섭리이듯이 정의와 진리를 위해 투쟁해 온 우리의 역사를 통해 알 수 있는 것처럼 반드시 정의 앞에 무릎 꿇는 날이 올 것입니다. 우리의 역사는 억압에 대한 투쟁의 연속이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바로 그 역사 속에서 대다수 민중은 좀 더 올바른 세상을 만들기 위하여 노력하였습니다. 지금 우리 모두가 하고 있는 이 일도 민주사회를 이루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에 우리는 기필코 승리한다는 신념을 가지고 일해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비록 감옥생활이 바깥 보다 어렵고 힘든 점이 많다 할지라도 기필코 우리는 승리한다는 확신을 가지고 지난날의 생활을 반성하며 앞으로는 좀 더 올바른 관점을 가지고 성실하게 할 수 있는 조건을 갖추기 위해서 열심히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히려 이 기회를 전화위복이라고 생각합니다. 요즈음 아버님, 어머님께서도 저의 생각을 이해해 주시는 것 같아 정말 기쁩니다. 이제는 이곳 생활에 익숙해졌기 때문에 하루하루의 생활을 계획적으로 보내고 있습니다. 아마 이번 달 말쯤에는 교도소로 이감 갈 것 같습니다. 저는 의미 있게 잘 생활하고 있으니 제 걱정은 하지 마십시요.

민성이한테 열심히 공부하라고 전해주고, 미현이한테 잘 지내라고 전해주세요. 교도소로 간 뒤에 접견을 올 때 티2벌하고, 책을 갖고 와 주십시요. 그리고 제 친구들에게도 열심히 투쟁하라고 전해 주십시요. 저는 이곳 감옥 생활을 조국의 완전한 민주주의를 쟁취하는 그날까지 성실하고 열심히 투쟁할 수 있는 강철 같은 의지를 단련하기 위한 전화위복의 기회로 생각하며 하루하루를 보람 있게 알차게 생활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제 걱정은 조금도 하지 마시고 건강하십시오. 아버님, 어머님, 누나, 미현이, 민성이 그리고 저의 가족 모두가 활짝 웃을 수 있는 민주의 그날까지 절대로 흔들리지도 좌절하지도 않을 것을 부모님 앞에 맹세합니다.

건강히 지내십시오.

아버님과 어머님의 자랑스러운 아들이 올립니다.

"조국분단 44. 3. 25. 서울구치소에서 민호 올림 “

- 부모님께 보내는 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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