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10월 22일(화), 故 송상진 열사의 민주공원 민주묘역 안장을 진행하였습니다.
배우자이신 김진생 님의 합장도 같이 진행하였습니다.
생전 송상진 열사는 학교 교사로 재직하였고 4.19 혁명 이후 민족민주청년동맹 사무국장을 지냈으며,
1964년 '인혁당 사건'으로 연행, 무혐의 석방되었으나, 사회적인 낙인으로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워지며
생업을 위해 양봉업에 종사하였습니다.
1971년 민주수호경북협의회 결성에 적극 참여하여 반독재 민주화운동에 참여하셨으나
1974년 4월 '인혁당재건위 사건'으로 구속되었고,
1975년 4월 8일 대법원에서 사형 판결을 받았으며, 다음 날인 9일에 바로 사형이 집행되어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이후 2007년에 이르러서야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재심으로 32년만에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그 때의 아픔을 다시 기억하듯 안장일의 날씨는 비가 왔지만 다행히도 안장을 진행하는 데는 무리가 없었고
무사히 안장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송상진 열사 유가족 및 서울 4.9통일평화재단, 대구 4.9인혁재단 관계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김재형 상임이사께서 함께 하셨습니다.
긴 시간 이후 민주묘역에서 합장하여 해후 하시게 된 두 분의 안식과 명복을 빕니다.
안장이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도와주신 유가족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2024년 10월 22일(화), 故 송상진 열사의 민주공원 민주묘역 안장을 진행하였습니다.
배우자이신 김진생 님의 합장도 같이 진행하였습니다.
생전 송상진 열사는 학교 교사로 재직하였고 4.19 혁명 이후 민족민주청년동맹 사무국장을 지냈으며,
1964년 '인혁당 사건'으로 연행, 무혐의 석방되었으나, 사회적인 낙인으로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워지며
생업을 위해 양봉업에 종사하였습니다.
1971년 민주수호경북협의회 결성에 적극 참여하여 반독재 민주화운동에 참여하셨으나
1974년 4월 '인혁당재건위 사건'으로 구속되었고,
1975년 4월 8일 대법원에서 사형 판결을 받았으며, 다음 날인 9일에 바로 사형이 집행되어 생을 마감하셨습니다.
이후 2007년에 이르러서야 서울중앙지방법원의 재심으로 32년만에 무죄를 선고받았습니다.
그 때의 아픔을 다시 기억하듯 안장일의 날씨는 비가 왔지만 다행히도 안장을 진행하는 데는 무리가 없었고
무사히 안장을 진행할 수 있었습니다.
송상진 열사 유가족 및 서울 4.9통일평화재단, 대구 4.9인혁재단 관계자,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김재형 상임이사께서 함께 하셨습니다.
긴 시간 이후 민주묘역에서 합장하여 해후 하시게 된 두 분의 안식과 명복을 빕니다.
안장이 원활하게 진행되도록 도와주신 유가족들께도 감사의 인사를 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