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5월 23일 전남 완도군 출생
1985년 조선대 산업공학과 입학
1985년∼87년 민주화투쟁 참여 중 군 입대
1988년 전역 후 전국건축일용 노조건설을 위해 현장 활동
1989년 2학기 복학 후 총학생회 예비역 협의회 활동
1990년 5월 과로로 입원
1990년 5월 18일 5.18민주화운동 10주기 집회에서 과도한 최루탄흡입으로 쓰러져 입원
1990년 6월 6일 사망
1990년 6월 7일 '조선대학교 민주학생장'으로 장례식 후 화순 송석정에 산골
2001년 2월 24일 조선대학교에서 명예졸업장 수여
2008년 9월 21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 안장
김학수는 1985년 조선대학교 산업공학과에 입학하여 대학생활을 시작하였다. 당시 조선대학교는 박철웅 전 총장의 독단적이고 파행적인 학교운영으로 총학생회의 치열한 학원민주화 투쟁이 시작되는 시점이었고, 국내 정치상황은 전두환 군사정권의 살벌한 공안정국 속에서 민주화를 위한 싸움이 들불처럼 퍼져나가고 있었다.
김학수는 민주화에 대한 열정으로 사회변혁운동, 5.18 광주학살자 처단과 책임자 처벌 등 반정부시위 및 총장 퇴진운동에 적극 가담하여 각종시위를 주도하였으며, 1986년 9월에 출범한 조선대 민주총학생회 건설 준비 활동에도 참여하였다. 1989년 9월에는 복학하여 예비역협의회 총무부장으로 활동을 하며 부당한 예비군훈련 개선을 위한 싸움과 민주화 시위에 적극 참여하다가 1990년 5월 과로로 입원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투병 중에 참석한 5.18민주화운동 10주기 기념식 시위에서 과도한 최루가스 흡입으로 쓰러졌다. 안타깝게도 급격한 과로와 체력소모로 급성 간염으로 전이 되어 약 19일 간의 입원치료 도중 합병증으로 1990년 6월 6일 사망하였다.
“85학번 김학수선배!!!
거구의 몸집에 어울리게 람보라는 별명으로 더 알려진 선배는 항상 웃음기 있는 얼굴과 여유로움 속에서 포근하고 정다운 선배로 기억된다. 또한 여유로움과 웃음기 있는 얼굴의 이면에 괴로움과 고통의 육신을 참아내는 인내의 정신과 자신이 해야할 일을 어떤 난관과 어려움에도 꺾이지 않고 해내는 그 책임정신이 새삼 오늘을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삶의 의미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 같다. 학원의 민주화를 위해 투쟁했었고, 이 땅의 민주주의와 자주화를 갈망하는 모든 이들의 역사 속에서 자리잡은 김학수선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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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사의 경고도 어머님의 부르짖음도 뒤로 하고 거리로, 투쟁의 현장으로 달려갔던 것은 무엇때문인가? 자신의 아픔을 알고서도, 육신의 빛이 서서히 꺼져가는 걸 느끼면서도 안일의 보신보다 더 중요하게 여긴 것은 무엇인가? 자신의 목숨과 맞바꾼 열의와 열정, 스물넷의 꽃다운 청춘을 허망한 강물에 띄워보낼 실체는 무엇인가를 다시금 생각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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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족을 위한, 민중에 의한 학교를 만들고자 학원자주화 투쟁의 한 가운데 서서 자기 한 몸 불살랐던 김학수선배 ... 정의를 부르짖고 민주주의를 원하는 교수 밑에서 공부하고자 민주 조선의 자주, 민주화를 위해 앞장섰던 김학수선배 ...“
- 1996년 추모제에서. 조선대 산업공학과 후배의 추모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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