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장자 상세 내용


성명

조정식


민주화운동내용

노동민주화 운동


사망일자

1989년 05월 24일


나이

25세


직업

대학생


관련자인정

2004/03/23 (100차)


민주화운동 내용

1. 약력

1964년 1월 17일 경기 의정부 출생

1982년 서울대 물리학과 입학, 학생운동에 투신

1984년 7월 인천 범아산업 취업

1986년 5월 인천 진도에 입사하여 노동운동 시작함

1987년 11월 서울대 반제동맹 사건으로 구속, 3년형을 선고

1989년 5월 10일 영전기계에 취업

1989년 5월 24일 오후 3시경 공장에서 산업재해로 사망

1989년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 안장

2014년 5월 25일 민주화운동기념공원 민주묘역 이장

2. 민주화운동 내용

조정식은 1982년 서울대 물리학과에 입학하여 학내 서클인 ‘물리과학회’와 ‘사람과 과학’에 가입하여 일본교과서 왜곡사건과 전두환 군사정권반대 집회 등에 적극 참여하였다. 노동운동에 관심이 많았던 그는 1984년 학교에서 제적된 뒤 인천의 범아산업과 (주)진도에 위장취업하여 노동조합을 결성하는 등 노동운동에 투신하였다.

1987년 9월 5일에는 국가보안법 위반, 소요, 집회및시위법 위반으로 징역 3년을 선고받고 순천교도소에서 수감생활을 하였다. 1988년 8월 14일 가석방으로 풀려났다. 출소 후 다시 노동운동을 하기 위해 1989년 5월 10일 서울 성동구의 영전기계에 위장취업하여 현장에서 노동운동을 하고자 하였으나 5월 24일 3시 반경 드릴작업을 하던 중 그의 뒤에서 작업하던 선반공이 시간에 쫓겨 선반의 속도를 높이는 순간 공작물 균형을 위해 고정시켜 놓았던 기계 밸런스용 중심추(약 30kg)가 튕겨 나와 동지의 뒷머리를 때려 병원으로 옮기던 중 사망하였다.

3. 열사 관련 기록

“아무리 되돌아보아도 저는 아직 아버님께 못난 아들입니다. 집안의 장남이면서도 아버님을 그 머나먼 땅에서 고생하시도록 만들고 가족들에게 본의 아니지만 온갖 슬픔과 고통을 주었던 점에서 저는 못난 아들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나라와 민족을 위해 제가 걷고자 하는 길을 훌륭하게 걷고 있지도 못하다는 점에서 저는 더욱 못난 아들입니다. 부모님의 헌신적인 희생과 노력에도 최고학부의 교육을 받아 머릿속에 든 것은 많지만 실제 사회생활 속에서 제가 가장 훌륭하고 떳떳하다고 믿는 길을 헤쳐 나가고 있지 못한 것이 부끄러운 현실입니다.

역사를 살펴보아도 저 보다도 훨씬 어려운 환경 속에서도 나라를 위해 힘써 일함으로써 후대의 귀감이 된 사람도 많건만 저는 아직 너무나 부족합니다. 그렇지만 저는 불의에 굽히지 않고 끝까지 싸우겠습니다. 그 어떤 시련과 난관에 부딪히더라도 도탄에 빠진 이 나라, 이 민족을 구하기 위해 굽히지 않고 살아가겠습니다. 만일 언젠가 제가 나라를 위해 조그마한 업적이라도 남긴다면 그것은 오직 아버님의 헌신적인 사랑과 희생의 결과라는 것을 온 세상 사람들에게 이야기 할 겁니다.

아버님 저는 제가 걷는 이 길이 아무리 옳고 떳떳한 길이라 할지라도 수많은 슬픔과 고통으로 점철되어 있는 길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만이 겪어야 할 고통이라면 저는 아무리 커다란 고통이라 할지라도 기쁘게 맞을 자신이 있습니다. 그러나 저 때문에 아버님, 어머님, 동생들이 겪는 고통 때문에 저는 가슴이 너무 아픕니다. 더구나 미제국주의의 하수인격인 저 가증스러운 군사독재 놈들이 의도적으로 가족들에게 귀찮게 하고 감시와 탄압의 마수를 뻗으면서 “당신 아들 때문에 그렇다”고 지껄여 댈 때는 저는 나라의 현실이 슬프기에 앞서 가족들이 어쨌든 저 때문에 고통스럽다는 데는 마음이 아픕니다.

그렇지만 아버님, 제 주위에만도 아들을 민주화의 성전에 바친 어머님, 아버님이 많이 계십니다. 그런 분들은 모두 다 아들의 원수를 갚고 한을 풀기 위해서 애국 민주화투쟁에 적극 참여하고 계십니다. 저는 고문당하다 죽은 제 선배, 후배들을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아니 일본과 미국의 식민지 지배 아래서 조국의 자주독립, 민주화를 위해 싸우다 숨져 간 수많은 애국지사들을 결코 잊을 수 없습니다. 그분 덕에 오늘의 이 나라가 있다고, 제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저 또한 나라 위한 한길로 꿋꿋하게 나아가고 싶습니다.

1989. 4. 25. 서울에서“

- 부모님께 보내는 편지 -



“나는 어릴 때부터 나라를 사랑해야 한다고 배웠다. 누구나 다 그렇겠지만 내가 초등학교 6학년 때 교실 앞에 걸린 청산리 전투의 그림을 보면서 거기에 그려져 있는 독립투사와 같이 나도 나라를 위해서 훌륭한 일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었다.

그러나 요즘 세상에는 애국자가 되기가 너무 쉽다. 독립기념관 건설이니 평화의 댐 건설이니 하는 데에 돈을 좀 낸다던가 해서 마치 자기가 애국자인양 설치고 있고, 심지어는 대공분실에서 나를 고문하던 놈도 자기가 애국자라고 했다. 내가 아니라고 했더니 그놈은 자꾸 애국자라고 우겼다. 이야말로 진짜 애국자, 애국선열들에 대한 참을 수 없는 모독이다. 진짜 애국자는 누구인가? 진짜 애국하는 사람은 돈과 권력으로 애국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나라의 문제점이 무엇인가? 무엇 때문에 우리나라 사람이 고통 받는가를 알고 이것을 해결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이다. 그걸 알기 위해서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어떻게 살고 있는가를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의 대부분은 하루하루 고통스런 삶을 살고 있다. 그렇지만 한편에는 잘 사는 놈들도 있다. 지주, 매판자본가, 반동관료배 이런 자들이다.

내 생각은 이런 정도였다. 그런데 나는 작년에 진도라는 회사에 다니면서 좀 의식이 발전하였다. 지금까지 내가 알지 못했던 숨겨진 엄청난 사실을 알게 되었다. 내가 다녔던 진도라는 회사는 종업원이 600명이나 되고 일 많이 시키기로 유명한 회사였다. 그런데 1년에 한 번씩은 일은 안하고 청소하는 날이 있다. 그날은 진도의 목숨을 떼었다, 붙였다 하는 미국 굴지의 외국인사가 오는 날이었던 것이다. 내가 진도에서 분명히 깨달았던 바, 그것은 지금까지 노동자를 착취하는 사람은 사장이라 생각했었는데 그 위에서 사장을 지배하는 놈이 또 있다는 것이었다. 미제국주의가 우리나라의 노동자들을 억압, 착취하는 원흉이다. 그래서 나는 애국하는 길이 바로 이렇게 나라를 망치는 미제와 그에 빌붙은 극소수의 매판 자본가 놈들을 없애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애국투쟁을 했고 노동자와 함께 하려고 했다.“

- ‘서울대 반제동맹 사건’으로 구속되어 재판에서 행한 모두 진술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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