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장자 상세 내용


성명

조만호


민주화운동내용

‘인혁당재건위’ 사건 수감, 고문·가혹행위 후유증 사망


사망일자

1996년 01월 26일


나이

62세


직업

무직


관련자인정

2011/11/29 (357차)


민주화운동 내용

1. 약력

1935년 2월 21일 경남 의령 출생

1957년 전주고등학교 입학 (2년 중퇴)

1961년 민주민족청년연맹(민민청), 민족통일협의회 등 진보·통일운동 단체 참여 활동, 노동운동에 참여

1969년 3월 학교도서보급소 경영

1974년 5월 2일 ‘인혁당재건위’ 사건 관련 연행 11일 비상보통군법회의에서 징역20년, 자격정지15년 선고

1982년 3월 2일 형집행정지로 석방

1996년 1월 24일 고문후유증으로 고통받다 경북대 다리 아래서 추락한 채 발견

1월 26일 사망

2. 민주화운동 내용

조만호는 전주중학교 야간부를 거쳐 1957. 전주고등학교에 진학하여 재학 중 2학년을 중퇴하고 공원 등으로 종사하다가 1961. 2. 민주민족청년연맹(민민청), 1961. 4. 민족통일협의회 등 진보운동 및 통일운동 단체에 가입하여 활동하고, 대구지역에서 노동운동에 참여하기도 하였다. 1969. 3.부터는 주거지에서 학교도서보급소를 경영했다. 조만호는 대구, 경북지역의 ‘인혁당재건위’ 사건 관련자들과, 그리고 특히 이재형과 교우를 지속했는데, 이재형은 경북대 정외과 58학번으로 4.19 후 대구지역 학생민통련에 참여하는 등 평화통일운동에 참여하는 등 지속적으로 민주화운동에 참여한 사람으로서, 양자는 당시 혁신계활동을 공유하였고, 유신반대 민주화운동의 대의에 대해서도 공감하고 있었다.

1974. 4. 1. 경북 영천군 영천읍 소재 이재형이 경영하는 가전사에서 동인과 회합하면서 “유신헌법은 국민의 기본권을 박탈하는 악법이고 1인독재체제를 시도한 것으로 폐지해야 한다. 1.8긴급조치는 국민의 입을 막는 강압책이고 독재정치로 현난국을 수습하여는 것이다”라고 이재형과 함께 주장하고, 1974. 4.말경 대구시 남산동 소재 주점에서 이재형과 회합, 동인에게 “정부가 정당한 국민의 기본권인 언론, 학원, 결사, 생존권을 억압하여 학생들이 반발하자 긴급조치4호를 발표한 것을 보니 현정부의 수명도 길지 않다. 역사적으로 합리적인 사상적 배경이 없는 정권이 오래간 사실이 없고 독재정권이 장기집권으로 무너지지 않은 사실이 없다”고 주장하고 이에 동조한 이재형이 긴급조치4호로 독재정권이 무너질 것이다“라고 주장함에 동조하고 정부를 비방한 일로, ‘인혁당재건위’ 구성과 관련 국가보안법 위반, 대통령긴급조치 제4호 위반 등으로 유죄판결을 받았다.

조만호는 ‘인혁당재건위’ 사건 관련으로 1975. 4. 8. 대법원에서 징역 20년을 선고받고 복역 중 1982. 3. 2. 형집행정지로 석방된 후 1996. 1. 24. 경북대 다리에서 추락한 채 발견되어 1. 26. 사망했는데, 사망진단서에 따르면 사망원인은 추락으로 인한 다발성 늑골골절과 뇌부종으로 되어 있으며 추락의 구체적 경위는 확실치 않으나, 조만호가 수사과정에서 여타 ‘인혁당재건위’ 사건 관련자들과 같이 고문과 가혹행위를 당한 점, 그리고 감시장치가 되어 있다고 신발을 뜯고 시계를 부수고 계속적으로 집을 옮기는 등 고문 및 수형생활로 인한 주요한 후유증상이 심각한 피해의식과 수사기관에 쫓기고 감시당한다는 환각증세였다는 점이 신청인 진술 및 다수 참고인들의 추가 진술들에 의해 공통적으로 확인되며, 관련인이 수감 이전에는 정상이었다는 자료들에 비추어보면 관련인의 정신이상 증세와 그러한 상황이 지속된 끝에 발생한 추락 사망은 고문과 수형생활의 영향에 의한 것으로 판단된다.

3. 열사 관련 기록

“조만호는 1969년 4.19공간에는 대구시 침산동 소재 풍국주정회사에 근무하면서 민주적인 노동조합을 결성하여 노동운동을 하였고, 한편으로는 민주민족청년동맹의 맹원으로 민주청년운동과 민족자주평화통일운동을 하였고, 5.16 이후에는 각급 학교를 상대로 도서납품업을 운영하면서, 세칭 1차인혁당에 연루된 바 있고, 그 후 서도원 도예종 송상진 하재완 등 제2차 인혁당사건 관련자들과 교류하면서 친분을 유지하여 오던 중, 특히 1969년 3선개헌반대투쟁 때는 신민당 경북도당과 대구지역 재야민주화운동인사들을 주축으로 조직한 3선개헌 반대 범국민투쟁위원회 경상북도지부에 참여하여 3선개헌반대집회에 가두시위 등에 참여하였고, 1971년 4월 22일에 결성된 민주수호국민협의회 경북협의회에 참여하여 활동하던 중 동년 4월 27일에 제7대 대통령선거에 대비하여 조직한 민주수호경북협의회 공명선거감시단에 참가하여 경산군내 각 투표소에서 이재문과 함께 순찰감시활동 임무를 담당하였고, 그 후 긴급조치사범으로 구속될 때까지 반유신운동에 적극 참여하여, 서도원 등 인혁당재건위사건 관련자들에게 경제적인 지원을 하였습니다.”

- 강창덕 인우보증서, 라경일 인우보증서 -



“오빠는 사건 이전에는 매우 똑똑한 사람이었는데 출소 후에는 말도 제대로 논리정연하게 하지 못했으며 손, 귀 등은 나무껍질처럼 메말라 있었고, 이가 모두 손상되어 있었고, 온몸에 고문의 흔적이 남았고, 무엇보다도 대인기피증세를 보였으며, 항상 누가 자신을 감시하고 따라다닌다는 환청과 환각증세를 보였습니다. 심지어는 본인의 제수 등 가족들까지도 자신을 감시하는 사람이 아닌가 의심하기도 하였습니다 ... ”

- 조만호의 동생 신청인 진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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