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5년 4월 17일 서울 출생
1984년 숭의여고 졸업
고려대 가정교육학과 입학, 고려대 기독학생회 동아리 활동및 각 대학 기독학생회 전국연합회인 대학기독학생연합회 활동, 학생시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
1988년 8월 대학으로부터 제적(미등록)된 후, 대학기독학생연합회 노동현장 준비팀에 합류하여 2개월간의 훈련
1988년 노동운동 위해 인천 링크시스템 입사
1989년 변압기 제조회사인 대한트랜스(주) 입사, 열악한 노동환경 속 근로하면서 노동조합 결성에 주도적으로 참여
1990년 5월 3일 노동쟁의와 관련 업무방해 혐의로 구속
1990년 8월 7일 인천지방법원에서 징역1년 집행유예2년 선고 및 같은 날 출소
1991년 인천지역 노동자들을 위한 문화공간 제공 및 기독교 복음 전파를 목적으로 설립된 인천노동선교문화원 창립, 인천노동선교문화원 ‘땀방울산악회’ 간사로 활동
1992년 여름 서울 중앙대병원에서 급성백혈병 발병 진단
1992년 9월 17일 백혈병으로 신촌 세브란스 병원으로 후송, 입원
1993년 9월 9일 백혈병으로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운명
2016년 3월 26일 민주화운동기념공원 민주묘역 이장
임혜란은 1965년 서울 출생으로 1984년 숭의여고를 졸업하고 고려대 가정교육학과에 입학, 고려대 기독학생회 동아리 활동 및 대학기독학생연합회 활동을 시작하고, 학생시위에도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등 실천문제에 고민을 하게 되었고, 노동운동을 위해 1988년 8월 대학으로부터 제적(미등록)된 후, 인천 링크시스템에 입사하였고, 1989년에는 보다 적극적으로 노동운동을 하기 위하여 구로1공단에 위치한 변압기 제조회사인 대한트랜스(주)에 입사, 열악한 노동환경 속에서 근로하면서 노동조합 결성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고, 이로 인해 1990년 5월 3일 노동쟁의와 관련 업무방해 혐의로 구속, 100여일 간 옥고를 치렀다. 출소 후 1991년 인천노동선교문화원 창립에 참여하였고, 인천노동선교문화원 ‘땀방울산악회’ 간사로 활동하던 중 1992년 초 이후 근육통과 고열이 심해지고 같은 해 8월초 더욱 악화되어, 전라도 광주에 있는 병원 등 2곳을 다녔고 서울에 있는 개인병원 4~5곳을 다니다 차도가 없어 1992년 여름 중앙대병원에서 급성백혈병이라는 진단을 받고 1992년 9월 17일 백혈병으로 신촌 세브란스 병원으로 후송, 입원하면서 투병생활을 지속하다 1993년 9월 9일 28세라는 나이에 백혈병으로 신촌세브란스병원에서 운명했다.
“옆의 사람이 죽어나가고 또 옆의 사람이 중환자실로 실려나가고, 한 병실에 있던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을 듣게 되고, 또 한 사람이 한 달 사형선고를 받았다는 소리를 들을 때마다 이젠 남의 일로 느껴지지 않아요. 죽음이라는 단어가 생소하기 보다는 친숙해지고 있지요. 그럴수록 살아있다는 의미가 다시금 생각이 들곤 해요. 지난날의 나를 돌아보게 되고 앞으로 살아간다면 어떻게 살아갈까 생각을 하게 돼요. 하나님 앞에 빈 마음으로 늘 배워 나가면 진정 이웃을 사랑하려고 노력한다면 그것만큼 아름다운 일은 없는 것 같아요. 자꾸만 낮아지려고 하세요. 발 밑에 밟혀 씨앗이 된다면 더욱 좋고요. 목소리 크게 외치기 보다 귀찮아 하는 제 몸뚱아리 조금씩 움직이려고 해보세요. 무엇인가 만들어 놓고 제 것이라 느끼기 보다 일꾼에 지나지 않았음을 느껴보세요. 그러면 어떤 상황에서도 감사할 수 있어요. 감사할 수 있다면 아무리 어려워도 다시 도전할 힘이 생겨요. 그래서 쓰러져도 일어설 수 있고 돌아오는 것이 없어도 허무하지 않아요. 아직은 저도 잘 모르겠어요. 중요한 건, 여러분이 지금 살아 움직일 수 있을 때 성실히 더 깊고 더 많은 사랑의 나눔을 할 수 있다는 것에 감사할 이유가 충분하다는 거예요.”
- 병상에서 인천노동선교문화원 갈릴리 회원에게 보낸 편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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