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장자 상세 내용


성명

이태환


민주화운동내용

‘인혁당재건위’ 사건 수감, 고문·가혹행위 후유증 사망


사망일자

2001년 03월 08일


나이

75세


직업

건축설계업


관련자인정

2011/11/29 (357차)


민주화운동 내용

1. 약력

1926년 3월 30일 대구 출생
1943년 3월 대구공업중학교 토목과 졸업
대구 수창초등학교 교사로 재직
1952년 10월 대한수리조합 연합회 경북지부 기술부원으로 재직
1961년 3월 측량설계사업체인 신광공무사 개설
1965년 경북정지사에 상무로 입사
1972년 8월 동 정지사 대표
1974년 ‘인혁당재건위’ 사건 관련 구속
1974년 7월 11일 비상보통군법회의에서 긴급조치위반, 국가보안법위반, 내란예비음모죄, 반공법 위반죄로 무기징역 선고
1982년 3월 3일 징역 20년으로 감형
1982년 12월 24일 형집행정지로 출소
2001년 3월 8일 사망
2008년 1월23일 서울중앙지방법원 재심에서 무죄 선고

2023년 4월 6일 민주화운동기념공원 민주묘역 이장

2. 민주화운동 내용

이태환은 대구공업 중학교를 졸업하고, 대구 수창국민학교 교사로 종사하였다. 4.19 후 민족자주통일중앙협의회(민자통) 경북협의회 등 혁신계활동, 1969년 ‘3선개헌반대투쟁위원회 경상북도지부’ 결성, 3선개헌반대 시위, 1971년 4월 22일 결성된 ‘민주수호경북협의회’에 참여하여 활동하였다. 또 1971년 4월 27일 제7대 대통령선거에 대비하여 조직한 ‘민주수호경북협의회 공명선거감시단’에 참가하여 부정선거 방지 및 공명선거 실현을 위해 노력하는 등 지속적으로 반독재 민주화운동에 참여하였다. 이후 1974년 4월경 ‘인혁당재건위’ 사건 관련자들과의 인적인 연계와 학생운동 지원활동, 긴급조치 비방 등을 이유로 1974년 7월 11일 비상보통군법회의에서 대통령긴급조치위반, 국가보안법 위반, 내란 예비·음모죄, 반공법위반으로 무기징역을 선고 수감되었다. 1982년 3월 3일 징역 20년으로 감형되었고 1982년 12월 24일 형집행정지로 출소한 이후 조사과정에서의 고문 가혹행위와 수감생활로 인한 후유증으로 2001년 3월 8일 사망하였다.

2008년 1월 23일 서울중앙지방법원은 재심에서 "수사과정에서 지속적인 구타와 물고문, 전기고문이 있었다"며 진술의 임의성과 증거능력을 인정하기 어렵다’고 판시, 무죄를 선고했다.

3. 열사 관련 기록

“망인은 8년 8개월의 복역생활 중 무기수였던 까닭에 독방에서 대부분의 시간을 보낸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또한 망인은 수감생활 중이던 1977년경부터 고혈압으로 고생을 했고, 출소 후에도 고혈압은 물론 청력, 언어장애 등으로 고생을 하시다가 운신마저 자유롭지 못했으며 결국 뇌출혈로 돌아가셨습니다.

망인은 돌아가시기 전까지 요시찰인물로 지정되어 주기적으로 전화나 경찰서로 불러내는 등 감시가 끊이지 않았습니다. 진술인과 지식들 역시 동네 사람들로부터 간첩집이라는 수군거림과 손가락질을 당하면서 살아왔다.”

- 이태환의 처 진술 2001. 6. 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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