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4년 5월 6일 전북 부안 출생
1988년 인천 협신사에 입사
1989년 노동조합을 설립하여 적극적으로 활동
1989년 10월 29일 괴한에 의해 둔기로 턱을 맞고 사망
이재호는 1988년 1월경 협신사에 입사하였다. 당시 협신사는 목재를 다루는 사업장임에도 환기시설 안전장치도 마련되지 않아 손가락이 잘리는 사고가 빈번하게 발생하는 안전의 사각지대였다. 이러한 열악한 작업환경과 근무여건을 개선시키기 위해 이재호를 비롯한 협신사 노동자들은 민주적인 노동조합을 건설하고자, 노동법관련 교육 및 토론, 외부집회에 연대하는 등 노동조합 설립과 결성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였다. 1989년 2월 27일경 노동조합이 결성되자 회사 측은 노동조합 간부 및 조합원을 폭행하고 권총(가스총)으로 위협하며 “노동조합은 빨갱이들이나 하는 짓이다”, “내가 민정당 부위원장이다. 나는 살 만큼 살았으니 너 하나쯤 죽여도 상관없다.”는 등의 폭언으로 협박하고 탄압하여 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키자, 이재호는 동료들과 노동조합 재건을 위해 ‘한백회’와 ‘등불회’에 가입하고 노동법 관련한 교육 및 상담을 받는 등 조직적인 활동을 하였다. 이재호는 1989년 10월 28일 퇴근 후 인천 주안5동 소재 ‘내일을 위한 집’에서 노동조합에 대한 교육과 상담을 마치고 주안역 부근에서 관리자의 전화를 받고 나가 10.29일 자취방 부근 주차장에서 괴한에 의해 둔기로 턱을 맞고 사망상태로 발견 되었다.
“고 이재호 피살사건은 노조재건 저지를 위한 회사측의 만행임이 명백하다.
지난 10월 29일 협신사(주) 노동조합의 재건을 위해 투쟁하다 젊은 노동형제가 죽어갔다. 고 이재호의 죽음을 몰고 온 협신사(주)의 노동자에 대한 착취와 노조탄압은 실로 상상을 초월한 것이었다. 근로기준법에 명시된 최소한의 노동자의 권리마저 박탈한 채 치부에만 몰두해 온 외사는 지난 2월 27일 노조가 결성되자 온갖 폭력적 방법을 동원하여 노조탄압을 자행했다. 사장이 직접 노조간부에게 가스총을 들이대면서 위협과 구타를 하는가 하면 관리자와 폭력배를 동원해 간부들을 감금, 구타하고 마침애 강제사직, 부당해고를 통해 노조를 실질적으로 와해시켜 버리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이러한 상상을 초원한 탄압도 협신가 노동자들의 투쟁의 의지를 결코 꺽을 수는 없었다
...
이러한 시점에서 노조재건 작업에 헌신하던 고 이재호씨가 노조상담을 마치고 귀가하던 중 의문의 죽임을 당하게 된 것이었다. 이처럼 회사측의 무자비한 탄압의 사태와 최근의 노조재건을 둘러싼 정황을 볼 때, 고 이재호의 피살사건은 회사측의 노조탄압의 일환이었음은 너무도 명백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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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건의 심각성과 진상규명의 중요성을 다시한번 강조하는 바이다.
우리의 요구
- 이재호 피살사건의 진상을 분명히 밝히고 범인을 색출 처단하라
- 수사기관의 의도적인 수사방향 왜곡과 진상은폐를 즉각 중지하라
- 조합원에 대한 불법적 탄압을 즉각 중지하라.”
- 고 이재호 의문사 진상규명대책위원회 “성명서” 1989. 11. 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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