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45년 7월 19일 전남 보성 출생
1964년 6월 3일 한일회담반대투쟁 참여
1964년 6월 7일 사망
- 망우리 묘지 안장
전남 보성 태생인 이윤식은 1964년 6월 3일 서울 광화문에서 건국대 학생 600여명과 함께 '굴욕 한일회담 반대' 시위대와 함께 트럭을 타고 이동 중 서울 중부소방서 앞길에서 트럭에서 떨어져 중상을 입었다. 서울대병원으로 후송돼 치료를 받았지만 6월 7일 혼수상태에서 깨어나지 못하고 숨졌다.
1964년 6월 3일 밤 통의동 길목에 연좌 데모하던 600여명의 학생들은 갑자기 최루탄을 쏘며 밀어내는 군인들에 쫓겨 중앙청 앞 광장으로 후퇴, 그곳에 있던 데모대와 합류, 불붙은 나무토막을 던지며 응수, 약 30분간 공방을 벌였으나 세종로 네거리 쪽으로 쫓기기 시작했다. 수많은 부상자를 낸 6.3항쟁 뒤 “데모학생들 몇 명이 죽었다”는 등 갖은 소문이 파다하더니 마침내 6월 7일 오후 서울대 병원에 입원가료 중이던 건국대생 이윤식이 사망했다. 사건에 대한 기사 게재를 일절 금지해온 계엄당국은 6월 9일에야 이를 발표했다.
“건국대생 이윤식 군은 6월 3일 오후 4시 30분 데모대원이 중앙청 앞에서 탈취한 트럭 뒤에 탔다가 굴러 떨어져 차 뒷바퀴가 이 군을 깔아 넘어 두개골 골절·늑골 골절·폐, 간 파열 등의 중상을 입고 서울대 병원에서 응급가료 중 사망했다.” 이같이 간단한 당국발표와는 달리 이윤식의 사망은 석연치 않은 점이 있었다. 서울대 병원의 사망진단서에 적힌 사망시간도 가지각색인데다 사인도 10여 가지가 넘었다.
“9일 상오 서울시경은 ‘지난 3일 학생데모 때 트럭에 탔다가 중상을 입은 건국대 농경과 1년 이윤식(19)군이 지난 7일 상오 9시반 사망했다’고 알렸다. 이군은 ‘지난 3일 하오 4시반 중앙청 앞에서 데모대의 트럭 뒤에 탔다가 중부소방서 앞 길에서 굴러떨어져 차량 뒷바퀴가 이군을 깔아 넘어 두개골 골절, 늑골 골절, 폐 간파열 등의 중상을 입고 서울대병원에서 응급치료 중에 사망한 것’이라고 밝혔다. 한편 이군의 유해는 9일 하오 1시 서울대병원을 떠나 망우리묘지에 안장되었다.”
- 1964년 6월10일 『동아일보』 기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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