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장자 상세 내용


성명

이석규

민주화운동내용

87년 노동자대투쟁


사망일자

1987년 08월 22일


나이

21세


직업

노동자


관련자인정

2003/11/11 (87차)


민주화운동 내용

1. 약력

1966년 11월 30일 전북 남원 출생


1982년 2월 용북중학교 졸업


1983년 광주 직업훈련원 용접기능공 수료


1983년 4월 ㈜대우조선 연수 11기생 입사(조립2부)


1986년 3월 방송통신고등학교 입학


1987년 8월 22일 오후 2시 40분경 대우조선 임금인상 투쟁 중 최루탄 피격


1987년 8월 22일 오후 3시 30분경 대우병원에서 사망


- 전남 남원 선산 안장

2. 민주화운동 내용

이석규는 1966년 전라남도 남원에서 출생하였다. 1983년 광주 직업훈련원 용접기능공 과정을 수료하고, 1983년 4월 옥포 (주)대우건절 연수 11기생으로 입사(조립 2부)한 후, 노동자들이 저임금과 장시간 노동에 시달리고 있는 노동착취의 현실과 노동자에 대한 사측의 비인간이고 비인격적 대우에 분노하였다. 1987년 7월 말 울산 현대엔진 민주노조 결성을 시작으로 전개된 '87년 노동자대투쟁'의 열기가 8월에는 옥포 대우조선에까지 휘몰아쳤다. 당시 대우조선 노동자들은 '노조결성', '임금인상' 등의 구호를 외치며 노동자대투쟁에 동참하였고 마침내 8월 9일 노조를 결성하였다. 그리고 지속적으로 사측과 협상을 시도하였으나 매번 결렬되었다. 1987년 8월 22일 오후 2시 40분경, 노동자들이 김우중 회장과의 면담을 요구하며 옥포아파트 사거리에서 평화시위를 벌이던 중 경찰이 기습적으로 시위대를 향해 직격 최루탄을 난사하였다. 이때 이석규가 가슴에 최루탄을 맞고 쓰러졌다. 대우병원으로 이송되던 중이었던 오후 3시 30분경, 사망했다.

3. 열사 관련 기록

6.29 선언으로 끊을 수 있는 6.10항쟁이 아니었다.
깨어난 사람들은 새로운 시작을 준비하였다.
6.10항쟁을 거치면서 깨어난 또 다른 이들은 나라의 경제를 짊어졌다는 이유로
노예의 사슬에 묶여 있던 이들, 바로 노동자가 깨어난 것이다. 무서운 기세로 전국으로 퍼져나가는
노동자대투쟁 앞에 폭력적 공권력의 무제한적 행패는 결국 대우조선 노동자 이석규씨를 최루탄 파편으로 사망하게 하였다.
그러나 굴하지 않는 노동자 대투쟁은 수많은 신화를 창조하였고
하나된 노동자는 ‘계란으로 바위를 쳐’ 드디어 바위를 깨뜨려갔다.

- 인터넷 6.10항쟁 기념관 중 -


... 


사람답게 살아보자고 나선 네가

짐승처럼 쓰러져, 선진조국 산업전사 작업복을 입고 쓰러져,

너의 피땀을 쥐어짜던 저들의 시뻘건 손에

우리 석규 우리형제 이 땅의 노동자가

이 나라의 민주주의가

벌건 대낮의 아스팔트 위에

처참한 피투성이로 살해되고 마는구나!


너의 갈갈이 찢긴 피투성이 시체앞에서

우리는 분노의 눈동자로 똑똑히 새겨보고 있다.


... 


- 박노해, 천만 노동자의 가슴속에 너를 묻는다, 고 이석규 동지를 살려내며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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