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9년 8월 17일 강원도 삼척 출생
1988년 3월 경원대 독문과 입학
1990년 동아리 활동과 학생운동에 참여
1990년 11월 시위 도중 화염병 소지혐의로 연행 고문당한 후 구속됨
1991년 출소 후 고문 후유증세 보임. 이후 정상적인 생활이 어려울 정도로 괴로워하며 치료 받음
1996년 9월 18일 치료 중 투신 사망
2014년 5월 26일 민주화운동기념공원 민주묘역 이장
이상희는 1988년 경원대 독문과에 입학, 동아리에 가입하여 학생운동에 참여하며 민주화운동에 나서게 된다. 3학년 때인 1990년 11월 3일 경원대학교 교내에서 용성총련이 주최한 '학생의 날 기념 100만학도총궐기 및 보안사 안기부 분쇄투쟁 결의대회'를 마치고 동료들과 함께 거리 시위 중 화염병 소지 혐의로 연행되어 집시법위반 등으로 구속되게 된다. 경찰에 연행되어 동료들의 이름을 댈 것을 강요받으며 가혹행위와 고문을 당했던 이상희는 1991년 100일 만에 석방되었으나 우울증 등의 후유증상을 앓게 된다.
그는 '열심히 살고 싶은 데 나를 조사했던 경찰들이 밤마다 꿈에 나타나고, 나 때문에 사람들이 다 잡혀가면 어떻게 하느냐'라며 출소 후에 정상적인 생활을 할 수 없을 정도였다. 결국 이상희는 되풀이되는 병원 치료를 받던 중 1996년 9월 18일 경희대 건물에서 스스로 투신 사망하였다
“본인은 위 이상희와 대학동기로서 88년부터 함께 민주화운동을 하였습니다. 그러던 중 이상희는 90년 구속수감되었습니다. 출소 후 정상적인 생활이 힘들 정도로 많이 괴로워하는 것을 보아왔고, 정신치료도 장기간 받았습니다. 하지만 그 후유증을 이겨내지 못하고 투신 자살하였습니다. 이상의 과정들이 구속수감의 후유증인 것인 바, 국가에서 보상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인우보증인 진술 -
“지난 역사의 상처는 이렇게 아물지 않은 슬픔으로 되살아나는가. 지난 7일 밤 9시 30분경 서울 상계동의 어느 아파트, 5공시절에 당한 고문으로 17년간 후유증을 껴안고 살아 온 이길상씨(39)가 13층 난간에서 스스로 몸을 던져 짧은 인생을 마감했다.
....
고인의 다섯째 동생인 상희씨도 경원대에 재학 중이던 1987년 시위 도중 경찰에 연행되어 고문을 당했다. 그 뒤 상희씨는 심한 우울증을 앓아오다 병을 견디지 못하고 결국 1996년 투신 자살한 것이다“
- 『내일신문』1998. 12. 23. -
[민주화운동기념공원] 17406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공원로 30 T.031-8011-9710 F.031-8011-9709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16029 경기도 의왕시 내손순환로 132 T.031-361-9500 F.031-361-9576
© 민주화운동기념공원.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