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장자 상세 내용


성명

이상남


민주화운동내용

노조민주화 투쟁


사망일자

1989년 05월 16일


나이

30세


직업

노동자


관련자인정

2010.7.12 (315차)


민주화운동 내용

1. 약력

1959년 10월 15일 전남 신안 출생
1984년 10월 현대엔진공업(현, 현대중공업) 입사
1987년 9월 12일 노동자대투쟁 당시 현대중공업 구사대 차량에 깔려 중상
1989년 5월 16일 병원에서 612일 간의 투병생활 중 사망
-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 안장

2. 민주화운동 내용

현대그룹 민주노조 설립 초기인 1987년 9월 12일 오후 3시경, 현대엔진공업 노조사무실 앞에서 현대중공업 경비대 및 관리직원들이 당시 현대중공업 노조 총무부장 김형권을 폭력과 함께 구사대 차량에 강제로 태워 납치하려 하였다. 이때 이상남이 이를 가로막다 차에 치여 머리와 허벅지가 바퀴에 끼인 채 5m 이상 끌려가는 중상을 입었고, 투병 중이던 1989년 5월에 사망하였다.

이상남의 사고가 있기 한 달 전인 1987년 7~8월은 노동자대투쟁에 앞장섰던 현대그룹 노동자들이 이유를 알 수 없는 ‘시청 방화사건’에 연루되어 전두환 정권으로부터 집중적으로 탄압을 받던 시기였다. 당시 대부분의 노조간부가 구속되었지만, 다행히도 노조 총무부장 김형권은 공권력의 탄압을 피해 은신에 성공하였다. 그리고 조합원들의 호위 속에서 항의집회를 주도하게 되었다. 그러나 신원을 알 수 없는 25~30여 명의 괴한들이 흰색 승용차 3대와 12인승 승합차를 타고 나타나 현대엔진 노조사무실로 들이닥쳐, 김형권을 무차별 폭행하여 실신시키고 납치하려 하였다. 당시 상황을 목격한 노조 임원들과 조합원들이 김형권의 납치를 저지하기 위해 승합차 앞을 가로막았지만 승합차는 전진하였다. 이때 이상남이 차에 치이면서 중상을 입게 되었다. “사람이 깔렸다. 세워라”고 여러 사람이 외쳤으나 “밀어붙여”라는 구사대 지휘자의 명령에 이상남이 앞바퀴에 낀 채 끌려가 온 몸이 으스러졌다. 이를 본 200여 명의 현대엔진 조합원이 몰려와 7명의 구사대를 붙잡아 조합사무실에 넘겼다. 7명 모두 현대중공업 총무부 소속으로 상부의 명령을 받고 사건을 저질렀다고 자백하였다. 이후 이상남은 입원 치료를 받던 중이던 1989년 5월 16일, 안타깝게도 투병 612일 만에 30세의 나이로 사망하였다.

3. 열사 관련 기록

“여러 사람이 있으니 누가 김형권씨인지 구별하지 못하고 망설이고 있는데 ○○○경비대장이 김형권씨 이름을 부르며 탁 잡았다. 그러자 어떤 놈이 주먹으로 김형권씨의 얼굴을 치며 때리기 시작하고, 이를 저지하는 협의회임원들과 충돌이 벌어졌다. 그때 노조사무실에는 10여명의 인원이 있었는데, 힘과 숫적으로 열세한 우리는 그들에게 밀려 회의실에 있던 김형권씨를 막을 수 없었다. 노조사무실은 아수라장이 되었다. 김형권씨는 그들의 발 아래서 무참히 짓밟히며 끌려나갔다... 노조사무실 안에서 매를 맞아 실신한 김형권씨는 강제로 봉고차에 태워져 또 다른 충격에 눈을 떠보니 의자 사이에 쳐박힌 채 안전화 발에 목이 밟혀 숨을 못쉬었다고 한다... (김형권씨는) 현대엔진 조합원들의 외치는 소리가 나고 봉고차의 유리창을 두드리는 소리를 듣고 다시 실신해버렸다.”

- 권용목,「현대그룹노동운동사III」,『새벽』3호, 석탑, 1988. 10. 20. 351~352쪽 -

“9월 12일 오후 3시 마침 휴식시간이라 밖에 나와 담배를 피워물던 이상남씨 등 현대엔진 조합원들이 “노조간부들을 다 잡아간다”는 소리에 화이버를 벗어던지고 뛰어왔다. 납치범들은 김형권씨를 계속 찍어대며 발로 차서 봉고차에 싣고 있었으므로, 조합원들은 필사적으로 차를 둘러싸고 출발을 저지시키려고 하였다. 이때 이상남, 지병한, 정규영씨 등이 차 앞쪽에 매달려 가로막았는데도, 차를 잠깐 뒤로 백 하더니 곧이어 액셀러레이터를 있는 대로 밟으며 전진했다. 급전진하는 터라 옆으로 피하던 사람들 중 한가운데서 막고있던 이상남씨는 그대로 차밑에 깔리게 되었다. 나는 그를 발견하고 “차밑에 사람이 깔렸다!”고 소리치며 차를 세우라고 소리질렀다. 그러나 ○○○씨(총무부소속으로 운전사) 뒷편에 앉아있던 ○○○씨(안전관리과 소속)가 계속 밀어붙이라고 소리질렀다. 결국 차는 3~4미터 전진하다가 수많은 사람 속에 갇혀 정지하게 되었다... 그러나 이상남씨는 머리를 앞바퀴에 깔린 채 질질 끌려갔으므로 귀고막이 터지고 광대뼈가 다 보이도록 깍였으며 코뼈는 이그러져 버렸다. 뿐만 아니라 골반뼈가 부서지고 무릎뼈 발목뼈까지도 망가졌으며 척추와 시신경을 다쳤다. 신고 있던 안전화가 다 헤져서 터질 정도였다(후략)“

-『전노협백서01』,1997. 191쪽, 권용목,「현대그룹노동운동사III」,『새벽』3호, 356~357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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