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장자 상세 내용


성명

이범영


민주화운동내용

반독재민주화운동


사망일자

1994년 08월 12일


나이

40세


직업

민주화운동가


관련자인정

2012/08/27 (378차)


민주화운동 내용

1. 약력

1954년 1월 11일 강원도 원성 출생
1973년 서울대 법대 입학
농촌법학회 참여1976년 12월 8일 서울대 ‘민주구국선언문’ 배포 및 유신반대 시위로 구속
1976년 12월 9일 위 시위를 이유로 서울대에서 제적
1977년 10월 4일 서울고등법원에서 긴급조치 9호 위반으로 징역2년6월, 자격정지2년6월을 선고
1979년 3월 ‘병역문제대책위원회’ 사건 관련 병역법 위반으로 1981년 3월 유죄판결
수배를 피해 도피생활
1979년 10월 29일 검거
1983년 9월 고 김근태, 고 김병곤 등과 함께 민주화운동청년연합(민청련) 결성
1985년 5월 3일 민청련 집행국장으로 활동 중 1988년 7월경까지 3년여 수배
1988년 9월 민청련 의장
1989년 1월 19일 전국청년단체 대표자협의회 의장
1989년 1월 21일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전민련) 중앙집행위원
1990년 8월 3일 범민족대회추진본부 공동본부장
1991년 12월 1일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중앙집행위원
1992년 2월 23일 한국민주청년단체협의회(한청협) 의장
1994년 8월 12일 사망, 마석모란공원 안장

2. 민주화운동 내용

이범영은 1994년 췌장암으로 40여년의 짧은 생애를 사는 동안 줄곧 민주화운동에 참여하고, 수년간 도피생활을 해야 했다. 그의 췌장암은 일생을 거친 수감과 수배생활을 떠나서는 생각할 수 없는 것이다.

이범영은 1973. 서울대 법대에 입학하고, 당시 법대의 오랜 전통의 써클인 ‘농촌법학회’에 참여하여 농활과 후배교육 등 적극적으로 활동했다. 그는 서울대 법과대학 4학년 재학 중 1976. 12. 7. 서울 관악구 이영의 집에서 박석운, 백계문과 함께 ‘유신헌법철폐, 긴급조치해제, 구속자 석방, 제적학생구재, 언론 및 학원의 자유’를 요구하는 ‘민주구국 선언문’ 300매를 작성하여 현행 헌법의 폐지를 주장하고 긴급조치를 비방하는 내용의 표현물을 제작하였다. 서울대학교 도서관 및 인문사회관 등에서 학생들에게 위 선언문을 배포하고 신청인은 “유신헌법 철폐하라, 학원자유 보장하라, 뇌물사건 공개하라.”는 구호를 외친 사실로 1976. 12. 9. 위 대학교에서 제적당했고, 1977. 10. 14. 유죄판결을 받았다. 이후 이법영은 1979. 3. ‘병역문제대책위원회’ 사건 관련 병역법 위반으로 유죄판결(벌금 1만원)을 받고, 1991. 7. ‘범민족 대회’ 건으로 인해 유죄판결(징역 1년 6월 집행유예 3년, 자격정지 1년) 등 총 3차례 유죄판결 선고를 받았으며, 그 사이 기간 1979. 10. 29. 검거되기까지 약 1년 간의 수배생활을 하였고, 1983. 故 김근태 등과 함께 민청련 결성을 주도하고, 1985. 5. 3. 민청련 집행국장으로 활동하던 중 ‘민청련 사건’으로 수배되어 1988. 7.말까지 약 3년여에 걸친 수배생활을 했다. 그는 이후 1988. 9월 민청련 의장, 1989. 1. 19. 전국청년단체 대표자협의회 의장, 1989. 1. 21. 전국민족민주운동연합 중앙집행위원, 1990. 8. 3. 범민족대회 추진본부 공동본부장, 1991. 12. 1.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중앙집행위원, 1992. 2. 23. 한국민주청년단체협의회 의장 등으로 활동했다.

3. 열사 관련 기록

“민청련이 창립된 날은 1983년 9월 30일입니다. 그리고 이를 ... 논의하고 준비한 것은 1982년부터였습니다. 고 이범영씨는 저의 대학 후배로서 학생운동 관련해 형을 받고 수배된 때부터 알고 지냈고, 민청련의 결성 준비과정 논의에서부터 활동을 함께 했습니다. 이후 민청련이 해체된 1989년까지 민청련 활동 전 과정에서 함께 활동하였으며, 그밖에 전민련, 국민연합 등 재야 민주화운동 또한 줄곧 함께 하였습니다.

1983-4년 민청련 초창기는 민주화운동에 대한 탄압이 극심하던 때로서 주요간부를 제외한 모든 활동간부들이 신분을 공공연히 드러낼 수 없던 시기였습니다. 이 시기 고 이범영씨는 민청련의 투쟁을 조직하는 조직활동의 업무를 맡았습니다. 1985년부터는 신분을 드러내고 집행국장을 맡아 활동하다가 수배되기도 했고, 1988년에는 민청련 의장으로서 활동하였습니다. 민청련 활동에서부터 전민련, 국민연합 등 재야 민주화운동 전 과정에서 1993년 암발병시기까지 독재권력에 맞서 민주화를 위한 노력에 함께 논의하고 활동했습니다”

- 고 김근태 인우보증서 2000. 10. 5. -



“1983년 9월에 창립한 민주화운동청년연합의 결성에 주도적인 역할을 했고, 1985년 민청련 사건으로 만 3년 동안 수배생활을 하다 1988년 7월에 검거되어 치안본부 장안동 대공분실에서 48시간 조사받고 나와서, 그해 10월에 민청련 의장직을 맡아 활동했다. 그때부터 그는 청년운동에 혼신의 힘을 쏟았고 반복되는 수배와 구속, 힘겨운 생활 속에서 그의 몸 속에는 암세포가 자라고 있었고, 그가 93년 병원을 찾았을 때는 이미 말기암 상태였다”

- 신청인 진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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