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6년 6월 16일 경남 창녕군 대지면 본초리 출생
1978년 상은(주)에 입사
1981년 5월 10일 마산 (주)우성택시 입사
1988년 1월 6일 파업농성 19일째에 협상이 결렬되자 단체협상 위반에 항의하며 분신
1988년 1월 8일 부산 복음 병원 중환자실에서 사망
- 경남 창녕군 대지면 안장
우성택시 90여명의 조합원들은 1987년 11월 24일부터 임금인상 등을 요구하며 24개 노조 노동자들과 연대파업을 벌여왔는데, 성과 없이 끝나자 1988년 1월 6일 파업 19일째에 임금협상 조기체결 및 단체협약 조항의 이행 등을 요구하며 파업투쟁 중이었다. 그러나 회사 측은 교섭에 소극적이고 노조 측의 요구사항도 들어주지 않으면서 노조의 양보만을 요구하고 있었다. 협상과정을 지켜보던 이대건은 분노를 참지 못하고 분신을 감행하면서 조속한 요구수락을 촉구하였다.
평소 이대건은 노동조합 활동을 열성적으로 해왔으며 파업 시에도 유인물, 벽보제작을 도맡아 해오는 등 가장 적극적으로 싸워왔다. 그리고 사경을 헤매는 가운데서도 회장에게 “배가 고파서 죽도록 만들어 놓고 이제 와서 뭐하러 왔느냐, 보기 싫다. 당장 나가라”고 외치며 분개하는 등 사망 직전까지 투쟁의 의지를 굽히지 않았다.
“마산·창원 지역의 우성택시를 포함한 법인체 택시 25개 노사는 1988년도 임금협상을 위한 노사공동협의회가 사측의 일방적인 교섭 거부로 인하여 중단되자, 1987년 12월 2일 마산시 신포동 매립지에서 노조탄압 보고대회 등 합법적이고 평화적인 시가행진을 하던 중 마산시 합성동 마산역 부근에서 공권력 투입과 강제진압으로 노조원 28명이 마산동부경찰서에 연행되고 십수명이 부상을 입었으며 강제해산되었습니다. 이러한 공권력 투입에 힘을 얻은 사측은 공동협의회 교섭을 일방적으로 중단하게 되었으며, 공동교섭이 중단됨에 따라 각 단위 노조별로 교섭을 하게 되었으며 우성택시에서는 1988년 1월 6일 14:00경 회사 대회의실에서 회사의 대표이사와 직원 그리고 다수의 노조원 간에 토론 형태의 노사협의회 창구가 열렸으나 대표이사의 모욕적인 발언과 비인간적인 태도에 울분과 설움에 노동해방을 외치며 분신을 시도하였습니다.
마산의 동마산병원, 삼성병원, 부산의 침례병원을 거쳐 부산 고신대부속병원으로 이송하였으나 전신의 98%가 3도 이상의 중화상으로 인하여 애석하게도 1988년 1월 8일 00시 53분경 운명하였습니다“
- 인우보증인 허 민 진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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