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장자 상세 내용


성명

김진수


민주화운동내용

노동민주화운동


사망일자

1971년 05월 16일


나이

23세


직업

노동자


관련자인정

2009/05/18 (270차)


민주화운동 내용

1. 약력

1949년 7월 8일 전북 임실군 장사면 출생

1967년 12월 안양고등학교 2년 중퇴

1968년 8월 15일 (주)한영섬유 입사

1970년 12월 31일 공장에서 노조파괴를 목적으로 폐업한다는 말에 자진사직

1971년 1월 4일 한영섬유에 재입사

1971년 3월 18일 노동조합을 파괴하려는 구사대에게 피습 당해 사경을 헤맴

1971년 5월 16일 사망

-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 안장

2. 민주화운동 내용

1970년 11월 전태일의 분신 소식은 한영섬유 노동자 일부에게 알려져 있었다. 그 해 12월 6일 영등포노동회관에서 열린 ‘노사문제 세미나’ 2주 후 12월 20일 전국섬유노동조합 서울의류지부가 결성되었고, 한영섬유에서는 3명이 참여하였다. 이후 이 3명을 중심으로 한영섬유 노동조합결성을 준비하였다.

당시 한영섬유는 서울시에서 할당한 수출 초과달성으로 많은 이윤을 남겼으나 노동자들에게는 수건 1장이 고작이었다. 한영섬유 노동자들은 1970년 12월 28일 점심시간 식당에서 노동조합을 결성하였다. 그러나 사측은 노동조합을 무력화시키기 위하여 공장가동을 일시적으로 중단하고 위장폐업으로 노동자 200명을 해고시키는 만행을 저질렀다. 노조는 부당노동행위에 대해 시정을 촉구했으나 사측은 부당노동행위를 강요하고 공포 분위기를 조성하여 노동조합을 탈퇴시키려 하였다. 노조 간부들이 해고된 상태에서 김진수는 강요에 의해 탈퇴한 조합원을 재가입 시키는 활동을 진행시키고 있었고, 사측은 김진수를 말 안 듣는 노동자로 분류하고 주시하였다. 매수된 구사대는 1971년 3월 18일 오후 3시경 일과시간 중 만취상태로 김진수와 동료를 폭행했으며, 노조 일을 적극적으로 하던 김진수를 불러 노동조합 탈퇴를 강요하였고 이에 불응하자 드라이버로 머리를 쳐 의식을 잃게 만들었다. 병원에 이송된 김진수의 상황에 대하여 제대로 의사에게 알려주지 않고, 사건을 숨김으로서 제때 치료를 받지 못하고 김진수는 5월 16일 숨을 거두었다.

3. 열사 관련 기록

“사망한 김진수는 가난한 가정의 독자로서 한영섬유에서 일하다가 노동조합을 파괴하려는 회사 측의 전위대에 의해 숨진 것입니다. 사회단체는 죽음의 원인이 무엇이며, 누가 죽였는가 하는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회사 측은 동료들끼리 싸웠다고 주장하며, 도의적인 책임으로 50만원의 위자료를 준다는 것이며, 노동조합 분회장 및 한영섬유 동료들과 가해자는 공장장의 지령에 의하여 노동조합을 파괴하는 활동 중에서 일어난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한 근로자의 죽음을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러한 인권의 유린에 대해 우리는 눈 감고 있어야 합니까?”

- 영등포 도시산업선교연합(1971. 6. 15일자) -

[민주화운동기념공원]
17406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공원로 30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16029 경기도 의왕시 내손순환로 132
T.031-361-9500 F.031-361-9576

© 민주화운동기념공원. ALL RIGHTS RESERVED.



[민주화운동기념공원] 17406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공원로 30 T.031-8011-9710  F.031-8011-9709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16029 경기도 의왕시 내손순환로 132 T.031-361-9500  F.031-361-9576 

© 민주화운동기념공원.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