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장자 상세 내용


성명

김윤기


민주화운동내용

노동민주화운동(덕진양행)


사망일자

1989년 04월 03일


나이

25세


직업

노동자


관련자인정

2001/05/29 (20차)


민주화운동 내용

1. 약력

1964년 12월 18일 서울 출생
1983년 3월 국민대학교 무역학과 입학
1986년 5월 5/3인천시위 참가로 구속(징역 1년)
1988년 7월 덕진양행 입사
1988년 11월 덕진양행 노조 결성
노조위원장 선출
1989년 4월 3일 투쟁 도중 협상 결렬에 항의하며 분신
1989년 4월 파주 금촌 공원묘지 안장

2015년 4월 6일 마석모란공원 이장

2. 민주화운동 내용

김윤기는 1983년 국민대학교 무역학과 입학 후 동아리 ‘청문회’에서 활동하며, 사회민주화와 노동자들의 삶에 대해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였다. 전두환정권의 군사독재 시절 대학을 다니면서 민주화 투쟁에 참여하였으며, 저임금 장시간 노동이라는 열악한 노동 조건 속에서 생활하는 봉제 공장 노동자들의 인권 보호와 민주적인 노동조합 설립을 위해 투쟁하였다. 1986년 5/3인천시위에 참가하여 구속되었고, 징역 1년형을 선고받았다. 출소 후에는 노동자와 함께 하고자 1988년 7월 경기도 성남시 중원구 소재 ‘덕진양행’에 입사하였다. 봉제 공장 노동자들의 열악한 노동조건을 개선하기 위해 각고의 노력을 기울인 끝에 1988년 11월 29일 남자 기숙사에서 노동조합을 결성하고 초대위원장으로 선출되었다. 노동조합은 덕진양행 측과 교섭에 들어갔으나 사측의 무성의한 태도로 교섭은 계속 결렬되었으며, 구사대는 조합원을 구타, 폭행은 물론 단전·단수 등의 조처를 취하며 노동조합의 업무를 방해하였고 퇴거 불응 등의 명목으로 고발하는 등 노동조합을 탄압하였다. 급기야 덕진양행 측은 1989년 1월 중순, 민주노조 탄압의 일환으로 노조에 사전 예고도 없이 갑자기 ‘공장이전’을 통보해왔다. 노조는 즉각 “경비절감 한다더니 땅값 비싼 서울이전이냐. 서울이전 철회하라!” 등의 구호를 외치며 2월 16일부터 파업농성에 돌입하였고, 1989년 3월 30일까지 십여 차례의 교섭을 진행하였으나 번번이 결렬되었다. 이에 김윤기는 파업 농성 47일째인 4월 3일 마지막이라는 생각으로 협상에 임하였으나 또 다시 사측의 무성의한 태도로 공장 이전 철회 관련 협상이 결렬되자 이에 대한 분명한 답변을 요구하며 자신의 몸에 시너를 붓고 항의하던 중 불이 붙어 병원으로 옮기던 중 사망하였다.

3. 열사 관련 기록

열사의 무덤 앞에서


품이 넉넉한 오빠 대신에


세상을 껴안기로 했지요.


세상은 내 한몸으로 보듬을 수 없을 만큼


크고, 넓고, 깊고 무겁지만


삶과 죽음이 가로 놓여 가까이 가려해도


갈 수 없는 오라버니 따스한 품속보다


차라리 오라버니가 껴안으려 했던 세상을


보듬기로 했습니다.


그 편이 덜 안타깝고 속 있는 일이라 생각이 듭니다.


가까이 가서 품에 닿아 본 세상은


삐죽삐죽 가시가 돋아 있기도 하고


뭉글뭉글 어머니 젖가슴 마냥 귀퉁이 밖에 안 되겠지만


칙칙한 흙 속에 갇힌 오라버니 몸뚱이보담


따스함을 가진 사람들이 부대끼고 살아가는 세상이


훨씬 살아있을 적 오라버니를 닮았지요.


이제 속절없이 오라버니 곁에 함께 있지 못함을 서운해하지는


않을 겁니다.


오라버니가 불덩이를 이고 걸었던 노동해방의 길에


태우다 사그라든 불을 지펴 놓을랍니다.


오빠가 짐졌던 죽은 자리 대신에


보란 듯 노동자 세상을 채우겠습니다.



- 김윤기 열사의 추모비에 동생 김선미가 남긴 추모시 -



오랜만에 선배님의 삶을 조용히 바라보고 있습니다.


80년 5월 광주라는 수 많은 청년들의 가슴에 부채의식으로 남아 있었던 80년대의 대학시절이 아련하게나마 그려집니다. 82년의 부산 미문화원 방화로 시작해 5월의 광주정신은 다시 꽃 피웠고, 그러한 대학사회의 분위기 속에서 선배는 국민대학에 입학하셨습니다. 백골단의 방망이와 구사대의 쇠파이프 앞에서 선배님은 기꺼이 매 맞는 자의 편에 있었습니다. 입사한 덕진양행 사측의 비인간적인 대우와 살인적인 노동시간에 맞서 마침내 노조를 결성하여 이들에 대한 처우를 개선하려 했습니다. 구조적인 한계를 극복하지 못한 선배님께서 약자가 할 수 있는 최후의 선택은 ‘자기희생’ 밖에 없다는 준엄한 교훈을 남겨 주신지 벌써 20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습니다.


- 김윤기 열사 20주기 추모에 앞서. 국민대학교 41대 총학생회 ‘날개를 달아’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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