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장자 상세 내용


성명

김용권


민주화운동내용

반독재학생운동


사망일자

1987년 02월 20일


나이

23세


직업

군인 (대학생)


관련자인정

2004/06/08 (108차)


민주화운동 내용

1. 약력

1964년 6월 10일 경상북도 청도 출생

1983년 서울대 경영과 입학

1984년 9월 청계피복노조 합법성 쟁취대회 참여

1984년 10월 노동악법 개정요구 및 노조탄압 반대시위 참여

1985년 1월 신한민주당(신민당) 점거농성 주도

1985년 10월 카투사 자원입대

1987년 2월 20일 내무반에서 의문의 죽음

1987년 서울 시립묘지 안장

2017년 7월 02일 민주화운동기념공원 민주묘역 이장

2. 민주화운동 내용

1983년에 서울대 경영학과에 입학한 김용권은 1985년 10월 카투사에 자원입대하여 의정부 소재 캠프 인디안에서 복무하였다. 그러던 중 1987년 2월 20일 오전 10시 50분경 자신의 막사에서 죽은 시체로 발견되었다. 영등포에 살고 있던 김용권의 어머니인 박명선은 그날 오전 10시경 부대로부터 김용권이 없어졌으니 급히 부대로 와보라는 연락을 받았다. 박명선 어머니가 부대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경이었으며 이때 아들 김용권의 시체가 막사에서 발견된 사실을 알게 되었다. 하지만 시체에 대한 검사는 이미 끝난 상태였으며 시체는 이미 병원으로 옮겨진 상태였다. 마침 스낵바에 있던 인사계가 현장의 모습을 설명해주었으며 그에 따르면 김용권은 자살했다는 것이었다.

가족들이 김용권을 마지막으로 본 것은 시체로 발견되기 이틀 전인 2월 18일이었다. 이 날 김용권은 자대를 오전 7시 25분 출발하여 용산소재 미8군 121병원에서 정신과 치료를 받고 복용약을 받은 후 영등포의 자택에 들렀다가 오후 7시경 전철을 타고 귀대하였다. 가족의 입장에서 김용권은 2월 18일에도 자살할 만한 별다른 징후를 보이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3남1녀의 장남으로서 집안에서 김용권에게 거는 기대가 컸던 만큼 자살소식은 쉽게 받아들이기 어려운 것이었다. 더구나 김용권이 고문을 당하였다는 등의 이야기를 들은 바 있고 또 시체가 발견된 날에도 몇 가지 납득할 수 없는 일이 전개되는 것으로 보아 타살일 가능성이 상당히 크다는 생각조차 하게 되었다.

이러한 의문을 해소하기 위해 김용권의 아버지와 어머니는 “고문 및 의문의 사망에 관한 진상조사와 관련자의 처벌”을 요구하는 진정서를 작성하고 이를 고문폭력대책위원회에 제출하였다. 이 위원회는 진정서를 접수한 후 김용권의 가정을 방문하여 의문점이 무엇인지를 자체적으로 조사하였다. ‘고 박종철군 범국민추도회 준비위원회 집행위원회’에서 ‘고 김용권군 의문사사건 진상규명위원회’를 구성하여 민간차원의 대응을 모색하였다. 이후 이 사건은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에 진정되어 조사가 이루어졌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의 조사에서도 구체적 사망경위가 확인되지는 않았다. 그러나 관련자가 학생운동에 참여하였고, 이로 인해 수사기관의 관찰대상자였다는 점, 관련자에 대한 보안부대의 구타 고문 및 프락치 활동 강요에 대한 보안부대원들의 진술 등의 자료가 확인되고 이를 토대로 관련자의 사망에 위법한 공권력의 행사가 영향을 미친 정황이 확인되었다.

3. 열사 관련 기록

“당시 김용권은 제가 아는 바로는 1학년 때부터 군에 입대하기 전까지 세 가지 활동을 하였는데 경영학과에서 학회활동을 하였고, 학내 등록 동아리인 세계문화연구회 활동을 하였고, 당시 지하 동아리인 사회과학연구회 활동을 하였었습니다. 1~2학년 때는 주로 사회현실에 대한 공부를 주로 하였고, 학내의 시위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였고, 1985년 1월경에는 민주총선 쟁취 학생연대에 참여하여 신한민주당사 점거를 기도하다 열흘간 구류를 살기도 하였습니다.”


-경영학과 학생운동 동료 공○○ 진술-


“당시 김용권은 상당히 의욕있게 참여한 기억을 하고 있고, 김용권이 군에 입대를 할 때에도 학교 주변 막걸리 집에서 군에 가서도 변하지 않겠다는 이야기를 하였던 것으로 기억을 하고 있습니다.”


-경영학과 1년선배 학생운동 동료 김○○ 진술-



“이 오만한 나라의 사람들이 지껄여대는 소리를 들으면서부터 그리고 같은 말이라도 카투사에게 할 때의 모멸적인 단어의 사용은 정말 소박한 애국심과 자존심을 상하게 한다.


...


내가 모든 일을 다 할 수는 없다. 나는 방향성을 같이 한 속에서 일 분야를 담당하는 것이다. 운동성만 잃지 않는다면 그 무엇이라도 자족이지만은 않은 것 ... 나에게 있어 SM(학생운동)은 과연 어떤 의미였던가?


...


그것은 결코 M(운동)의 포기가 아니었기에 괴로움은 덜했다. 그러나 BG(부르조아)의 형태로 PT(프롤레타리아)운동을 한다는 것 또한 어려운 것 같다.


...


<북한기행>이라는 책을 읽기 시작했다. 우리의 통일을 이 시대의 중요한 과제로 생각한다면 필히 통일과 관련된 일방인 북한의 문제를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이다. 올해 초에도 많이 논의가 됐던 것 ... 여기에 나의 기본적인 입장의 천명이 중요한 일이리라 생각이 된다, ‘주체사상’을 강조한다는 나라 일인숭배사상의 부정적 측면이 북한정치의 비판 중에 하나였다. 그러면 나의 물음은 주체사상과 개인숭배사상의 관계인 것이다. 카리스마의 존재는 무엇을 의미하고 어떤 작용을 하는가.“


-김용권의 일기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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