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장자 상세 내용


성명

김영균


민주화운동내용

노태우정권반대 (91년‘5월투쟁’)


사망일자

1991년 05월 02일


나이

20세


직업

대학생


관련자인정

2001/03/20 (15차)


민주화운동 내용

1. 약력

1971년 12월 20일 서울 출생

1987년 대원고등학교 입학

1989년 참교육을 고민하는 소모임 ‘목마름’ 창립(홍보부장)

1990년 안동대학교 민속학과 입학

1990년 민속학과 학술동아리 ‘민속문화연구회’ 창립(초대회장)

1990년 조국통일범민족대회 통일선봉대 참가

1990년 마당극 ‘흩어지면 죽는다’, ‘새벽을 밟으며’ 공연

1990년 우루과이라운드 반대 경북농민대회 참가

1991년 민속학과 학생회 부학생회장

1991년 교지 ‘솔뫼’ 편집위원회 대외사업부장

1991년 5월 1일 故강경대열사 추모 및 공안통치 분쇄를 위한 범안동대인 결의대회 중 분신

1991년 5월 2일 20시 13분, 경북대학교 병원 화상병동 301호에서 사망

1991년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 안장

2. 민주화운동 내용

김영균은 1991년 5월 1일 ‘故강경대열사 추모 및 공안통치 분쇄를 위한 범안동대인 결의대회’ 도중 분신하여 5월 2일 경북대학교 병원에서 사망하였다. 김영균은 일찍이 고등학교에 재학 중이던 시절부터 교내에 참교육을 고민하는 소모임 '목마름'을 결성하는 등 친구, 선후배들과 함께 교육·사회문제들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하였다. 이 같은 치열한 고민 속에서 성장한 김영균은 1990년, 대학 신입생이었던 시절에 이미 민속학과 학생회 산하에 '민속문화연구회'를 결성하여 초대회장을 맡아 활동하였고, 또 ‘조국통일범민족대회 통일선봉대’ 등에도 참가하면서 사회 및 정권비판 활동에 적극 동참하였다. 그는 선배들에게는 기특하면서도 어려운 후배였고, 동기들에게는 믿음직한 동지였다.


같은 해 겨울, 김영균은 총학생회 선거에서 후보자를 내지 못해 허탈한 심정으로 집이 있는 서울로 방학을 보내기 위해 올라왔다. 그리고 어려서부터 절친했던 친구 최응선의 형이자, 고교시절 활동한 ‘목마름’에 많은 조언을 해주었던 최응현이 11월 8일 한양대 옥상에서 투신했다는 비통한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김영균은 최응현의 죽음으로 의지가 더욱 강해졌고, 겨울방학 동안 공장에서 아르바이트를 하였다. 이어 2학년 1학기를 맞은 김영균은 아르바이트로 번 돈으로 전교조 활동으로 해직된 대원고 교사가 운영하던 서점에서 서적들을 구입하여 ‘민속문화연구회’에 기증하는 한편, '솔뫼' 교지편집위원회에서 대외사업부장을 맡아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같은 해 4월 26일, 명지대 학생 강경대가 경찰이 휘두른 곤봉에 맞아 사망하는 사건이 발생하였고, 5월 1일 안동대 교내에서는 '故강경대 열사 추모 및 공안통치 분쇄를 위한 범안동대인 결의대회'가 열렸다. 김영균은 이 행사에 참여하여 “공안통치 분쇄, 노태우정권 타도” 등의 구호를 외치며 분신하였다. 분신 직후 그는 주변에 있던 동료들에 의해 곧바로 경북대학교 병원에 이송되었지만, 안타깝게도 5월 2일 저녁 8시 13분경 꽃다운 20세를 일기로 뜨거운 삶을 마감하였다.

3. 열사 관련 기록

“형이라 부르고 싶습니다.

왔습니다. 이제야 참았던 그리움을 잊고져 당신의 무덤 앞에 서 있습니다.

울고도, 소리도 지르고 당신을 위한 ‘그날이 오면’도 부르고 싶습니다. 당신이 노동법을 공부할 때 그렇게 부러워했던 대학생이 되어서 당신 같은 노동자에게 세상에서 천대받는 노동자 앞에 고개 숙여 무릎 꿇어 당신에게 소주 한 잔 따르렵니다.

가식으로 일관된 지식인으로서 당신의 노동, 당신의 고통을 이해하려고 했던 저를 꾸짖어 주십시오. 나의 생활이 너무도 평화롭기에 행여 당신의 존재를 망각할 때가 있을까 두렵습니다.

형, 형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태일이 형!

여기 모란공원에 묻힌지도 20년, 제 나이도 스무살… 그토록 많은 시간이 흘렀건만 형이 외친 노동악법 개정은 고사하고 아직도 나이 어린 우리 형제들이 저임금, 장시간 지옥같은 노동환경 속에서 산업재해에 시달리며 시름시름 병들어 죽어가고 있답니다.

형,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고 형이 외친 간곡한 절규는 어디로 갔나요. 누가 형을 한스럽게 죽게 했는데 그 사람들은 지금도 옥좌에서 기름진 음식을 쳐먹고 있는데 왜 노동자가 주인되는 세상은 오지 않는 걸까요.

아! 태일이 형, 11월 13일이 해마다 오겠지요. 해마다 형을 추모하는 집회가 열리겠지만 민중이 깨어나 투쟁하지 않는 한 형의 목숨하고 바꾼 그 목소리는 흐르는 강물에 뼛가루를 날리듯 공허한 메아리로 남을 것입니다.“

- 김영균이 남긴 글 중 -


“내일의 싸움을 위해

화염병을 새벽 두 시까지 만들고

지친 몸 잠시 눕힐 쪽방으로 가는 길,

짜식은 ‘사랑을 하려거든 목숨 바쳐라’를 불러댔다

지나가는 말로 떳떳한 죽음에 대해서도 물었다

실없게시리,

가는 길에 길섭이가 꽃병을 시험해 본다고

길바닥에 불을 붙여 던지자

균이는 불이 꺼진 후

깨진 유리 파편을 쭈그리고 앉아 하나하나 줏었다.

꼬마들 길에서 맨발로 놀다가 발 빈다고 그리고

만 원 짜리 지폐 한 장을 내 손에 건넸다

너희들 어제 먹은 외상 술값 갚는데 쓰라고 말하며

궁하던 때에 만 원이라니 얼른 받아 넣었다

아무 생각 없이,

집에 도착해 방문을 열고 들어서자마자

짜식아! 저는 정말 좋은 놈이었다며

내게 칭찬을 마구 퍼부었다 지나칠 만큼“


- 김영균 분신 전날 밤 함께 자취방을 쓰던 규홍이 일기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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