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장자 상세 내용


성명

김수경


민주화운동내용

교육민주화 운동


사망일자

1990년 6월 5일


나이

18세


직업

학생


관련자인정

2004/03/16 (99차)


민주화운동 내용

1. 약력

1972년 4월 25일 출생 

1988년 대구 경화여고 입학 

1989년 8월 전교조 결성시 대의원으로 교사징계반대 활동주도

1990년 경화여고 학생회 총무부장

1990년 6월 5일 체육교사에게 부당한 체벌 당한 후, 밤 9~11시경 영남대 인문관 옥상에서 투신하여 사망

1990년 화장 후 대구 현대공원에 묘역 조성

2. 민주화운동 내용

1989년 전교조 가입교사에 대한 탄압 시 대구 경화여자고등학교에서는 김수경의 담임교사를 포함해서 모두 6명의 교사가 해직 당하였다. 김수경은 학생회 대의원으로 전교조 가입교사 징계반대 활동에 열심히 참가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그는 징계 반대시위를 여러 차례 주도하고 이것으로 인해 ‘빨갱이, 운동권’이라는 문제 학생으로 찍히게 되어 많은 고통을 당하였다.

1990년 김수경은 학생회 총무부장을 역임하면서 학생회장과 함께 학생회 활동을 이끌게 되는데 6월 5일 그는 친구와 함께 모 교사로부터 건방지다는 이유로 폭행과 그간 활동에 대한 심한 폭언을 당하게 된다. 김수경은 “전교조와 관련해 이런 식으로 찍힌 학생은 대접을 못 받는다는 것을 알았다. 내 죽음이 왜곡되지 말았으면 좋겠다.”는 내용의 유서를 남긴 후 학교를 떠났다. 김수경은 해직된 담임교사에게도 “전교조를 지지했던 것이 죄가 된다면 법정에서 떳떳이 죄 값을 받고 싶습니다.”는 유서를 남기고 6월 5일 밤 9시~11시 영남대 인문관 4층 옥상에서 투신, 사망하였다.

3. 열사 관련 기록

“선생님! 먼저 이런 글을 올리게 될 수밖에 없었던 절 용서부터 해주세요.


뭘 어떻게 써야 할지 타고 오는 버스 속에서 한참을 생각했는데 결국 제게 남은 건 눈물밖에 없습니다. 아마, 이 편지가 도착할 때쯤이면 아마 전 이 세상에 없을 것 같습니다.


아주 어릴 때부터 ‘자살’이란 것에 동경을 느껴오긴 했지만….


3학년에 올라온 전 한창 꿈에 부풀었습니다. 어림없는 성적으로 서울에 가고 싶다는 엄청난 꿈을 꾸면서 아침 일찍 일어나기 힘들어도 쉴 새 없이 계속 되는 보충수업, 정규수업, 방송수업, 자습….


모든 게 숨이 막혀도 아주 잘 참아냈어요. 가끔씩 몸이 아프긴 했어도 견딜 수 있었구요. 그러는 동안 3월 모의고사를 치렀습니다. 물론 형편없는 성적이었지만 그래도 가슴 한 구석에서 이제까지의 절 지켜준 건 할 수 있다는 오기 하나였습니다.


4월 초순에 접어들면서 상담이란 게 시작되었습니다. 1번, 2번… 10번 학생까지 갔다 오고 모두 침울해하고 간혹 우는 애들도 있고 잔뜩 긴장을 했었지요. 그러다가 허리 통증 때문에 제 상담차례를 어기고 엄마와 함께 병원으로 향했습니다. 그 때 잠깐 엄마와 담임선생님과의 대면이 있었는데 그 틈을 이용해 은남이 선거 때 찬조연설 했던 얘기, 학교에서 주시하는 인물이라는 둥, 서클에 가입이 되어있니 어쩌니 저쩌니 하는 식으로 얘기(고자질)를 했었던가 봐요. 물론 그 자리엔 제가 없었죠. 아무것도 모르고 병원에 다녀왔는데, 그 날 저녁 엄마가 제게 조용히 얘기를 하시더군요. 너무 기가 막혀 오히려 제가 화를 내버렸어요.


그 다음날 전 도살장에 끌려가는 돼지 꼴을 하고는 진학실로 갔습니다. 앉자마자 대뜸 묻는 얘기 “무슨 생각을 하느냐, 자주 만나는 선배 얘긴 뭐냐., 전교조 선생님 어쩌고 저쩌고…“


아주 상냥하게 끓어오르는 그 뭔가를 참으며 대답을 하고는 성적 얘기 30초. 그렇게 진학실 문을 뒤로 하고 나왔습니다.


선생님! 그 때 제 기분을 이해하실 수 있으세요?


비겁하고 비굴하게 왜 이렇게 초라한지 친구 등에 얼굴을 묻고 그냥 울어버렸어요. 그렇게 그게 끝인 줄 알았어요. 국사시간마다 눈은 제가 앉아있는 분단 쪽을 향했고 분단 아이들이 당황했어요.


선생님! 제가 작년에 전교조를 지지했던 것도 사실이었고, 그런 선생님을 더 좋아했던 것도 사실입니다. 이런 이유하나만으로 제가 학교 다니기가 불편하다면, 아니 고통스럽다면 이미 그 곳은 학교가 아닙니다.


오늘 청소시간에 자신의 말을 무시했다는 이유하나만으로 따귀를 맞고 모든 학생들이 보는 앞에서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습니다.


서진교! 그 사람은 제게 반항적인 행동이 보였느니, 순종이 좋지 않느니, 그러다가 퇴학이 어쩌니 저쩌니 앞으로의 사회생활이 어쩌니 저쩌니…. 그러곤 자신이 너무 했었다고, 아무 감정도 없었다고.


확실히 전 학교가 주시하고 있는 주요 인물이었습니다. 그게 너무 서럽고, 더러운 세상(죄송합니다.)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모두들 제가 걸려주기만을 기다렸던 것 같았습니다.


이제 왜 제가 죽으려고 하는지 아시겠습니까?


처음엔 아무런 글귀하나도 남겨 놓지 않으려 했습니다. 하지만 분명 제가 죽은 후 세상은 절 성적 때문에 비관자살 했다고 그렇게 왜곡되는 게 싫어서였습니다.


어떻게든 참고 이겨보려 했지만 이젠 모든 게 싫습니다.


제가 어린 학생이 아닌 어른이 되어버린다면, 아니 세상에 물들어 버린 어른이 된다면…. 그런 것도 두렵구요.


다시 태어나고 싶습니다.


이런 제자 둔 것 너무 마음 아파하시지 마시구요. 건강하세요.


전교조를 지지했던 게 죄가 된다면 법정에서 떳떳이 죄값을 받고 싶습니다.


ps. 선생님 사랑합니다.


'90. 6. 5. 수경 올림.“


- 김수경이 선생님께 쓴 편지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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