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장자 상세 내용


성명

김세진


민주화운동내용

반외세·반독재 운동


사망일자

1986년 05월 03일


나이

21세


직업

대학생


관련자인정

2001/08/28 (26차)


민주화운동 내용

1. 약력

1965년 2월 20일 충북 충주 출생
1983년 2월 경복고등학교 졸업
1983년 3월 서울대학교 자연대학 입학
1984년 7월 감리교 자교교회 청년회장
1985년 3월 자연대학생회 부학생회장 및 미생물학과 학회장
1986년 3월 서울대학교 단과대학 학생회장단 대표
1986년 4월 28일 전방입소거부투쟁 도중 이재호와 함께 분신
1986년 5월 3일 한강성심병원에서 사망

1986년 판교 공원묘지 안장
2014년 5월 3일 민주화운동기념공원 민주묘역 이장

2. 민주화운동 내용

김세진은 1986년 4월 28일 오전 서울 관악구 신림사거리 가야쇼핑센터 앞에서 ‘전방입소훈련 반대’ 가두시위 도중 경찰의 폭압적인 강경진압에 항거하며 분신하였다. 전두환 정권은 1981년부터 대학생들을 대상으로 용병교육인 ‘전방입소훈련’을 강제적으로 실시해왔다. 당시 서울대에 재학 중이던 김세진, 이재호(반전반핵투쟁위원회 위원장)는 이 같은 정부 정책에 항거하고자 ‘전방입소훈련 전면거부 및 한반도 미제 군사기지화 결사저지를 위한 특별위원회’를 결성하였다.

이를 계기로 1986년 4월 28일 오전, 서울대에서는 총학생회 주최로 400여 명의 2학년 학생들이 신림사거리 가야쇼핑센터 앞으로 나와 “반전.반핵 양키고홈”, “양키의 용병교육 전방입소 결사반대” 등의 구호를 외치며 행진하는 가두투쟁을 전개하였다. 당시 자연대 학생회장이었던 김세진과 반전반핵투쟁위원회 위원장이자 동갑내기 친구였던 이재호는 함께 예식장 옆 3층 건물 옥상으로 올라가 가두투쟁을 이끌었다. 그리고 이를 저지하던 경찰들이 학생들을 무자비하게 구타·연행하면서 건물 옥상에도 진입하자, 두 사람은 온 몸에 시너를 뿌리고 경찰에게 강경진압 중단을 경고하면서 "접근하면 분신하겠다"고 소리쳤다.

그럼에도 경찰은 이를 무시하고 강경진압과 함께 두 사람을 체포하려 하였다. 이에 두 사람은 동시에 그 자리에서 분신하였고, 전신에 3도 화상을 입은 채 여러 병원을 전전하였다. 이어 가까스로 한강성심병원으로 옮겨져 치료를 받았으나 끝내 버티지 못하였다. 김세진은 1986년 5월 3일에, 이재호는 5월 26일에 꽃다운 청춘 21세를 끝으로 각각 짧은 생을 마감하였다.

3. 열사 관련 기록

“아버님, 어머님

걱정을 끼쳐드려 죄송합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이제 저는 정말 저의 본심을 적고자 합니다. 그동안 부모님께 대했던 태도는 저의 참 마음이 아니었습니다. 제 생각을 이야기했을 때 부모님께서 행하실 반대와 방해가 두려워 일부러 피하고 괜히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게 됐습니다. 대학에 들어와 저는 인간과 세계에 대해 고민을 했습니다. 눈 앞에서 개패듯이 끌려가는 선배와 동료들을 바라보며 저는 우리의 역사와 사회에 대한 고민으로 밤을 새웠습니다. 그리고 저는 알았습니다. 이 땅의 가난의 원흉은, 뼈아픈 분단의 창출자는, 압살되는 자유의 원인은 바로 이 땅을 억압하고 자신들의 대소 군사기지화, 식민지화시킨 미 제국주의이며 그 대리통치 세력인 군사파쇼라는 것을. 저의 대학 생활은 인간의 해방과 민중의 그리고 민족의 해방을 위한 끊임없는 고민의 과정이었으며 그것의 쟁취를 위한 투쟁의 과정이었습니다. 광주에서의 학살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군사 지휘권을 가진 미국이 병력 이동을 허락하지 않았으면 파쇼는 결코 공수부대를 투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

저의 행위는 한순간의 영웅심이나 학생회장이라는 것 때문에 억지로 한 것이 결코 아닙니다. 대학에 들어와서 읽은 수 백 권의 책과 객관적 조국의 현실을 바라보며 고뇌하며 오랜 시간 고민하여 얻은 결론입니다. 아버지, 어머니 저를 믿어주십시오

...

사랑합니다. 아버지, 어머니!

해방된 조국의 땅에서 자랑스러운 아들임을 뿌듯하게 느낄 때가 반드시 올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저의 투쟁 속에서 그 날을 앞당기겠습니다.

1986년 4월 26일 세진 올림”

- 부모님께 드린 마지막 편지 -

“그대 죽어 백일이 되었구나

어둠을 불질러

그대 뜨거운 불덩어리로

반제반핵 이 땅의 양키 꺼져라 외치다가

양키 꺼져버려라 외치다 쓰러져

이제 죽어 말이 없구나

온 민중의 분노 꼭 껴안고

마침내 시꺼면 숯덩어리로 묻혀 말이 없구나

...

1986년 4월 28일 오전 9시 반 신림동 네 거리

한 건물 옥상에서

반전반핵평화옹호투쟁위의 85학번 학우들 앞에서

수많은 학우의 농성장 앞에서

그대는 이재호와 함께 처절하게 외쳤다

반전반핵 양키는 꺼져라

그리고 선언문을 뿌렸다 전단이 널렸다

그리고 그대는 마지막으로

농성대열 짓밟는 전경대에 경고했다

그대와 이재호의 몸에

그대는 석유를 붓고 외쳤다

더 이상 물러설 땅이 없었다

그대는 불을 당겼다

벗의 몸도 불에 싸였다

불덩어리였다

불덩어리였다

...

우리 여기 모여

그대 살아있음을

펄펄 살아있음을 깨치노니

숯은 썩지 않는다

그대 숯덩어리 썩지 않는다

오 민족의 꽃 산화하여

민족의 썩지 않는 숯으로

파묻혀 있음이여

영령이여

어둠을 불지르고

악을 불살라

...

그대 스무살 청춘 산화 아니거든 무엇이겠느냐

어둠 불사르고

가난 불사르고

분단 활활 타오르고

길고 긴 팟쇼 불사르는 싸움

...

그대 여기 살아있구나 살아있구나

오늘이구나“

- 고은, “그대 숯덩어리 썩지 않나니 - 김세진 열사의 분신 백일을 맞이하여” -



“그 날은 오리라 자유의 넋으로 살아

벗이여 고이 가소서 그대 뒤를 따르리니

그 날은 오리라 해방으로 물결 춤추는

벗이여 고이 가소서 투쟁으로 함께 하리니

그대 타는 불길로 그대 노여움으로

반역의 어두움 뒤집어 새날 새날을 여는구나

그 날은 오리라 가자 이제 생명을 걸고

벗이여 새날이 온다.

벗이여 해방이 온다.“

- “다시 벗이여 해방이 온다” 김세진, 이재호 열사 추모곡(이창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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