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7년 4월 5일 대구 출생
1986년 대일 고등학교 졸업
1987년 청주사대 역사교육과 입학
1988년 흥사단 아카데미 회장
1988년 제4대 동아리연합회 학술부 차장
1988년 8.15 남북학생회담 통일선봉대 출정
1989년 제 20대 혁신총학생회 사회부장, 농촌활동 준비위원장
1989년 8월 병 악화로 휴학
1990년 9월 15일 사망
2014년 5월 26일 민주화운동기념공원 민주묘역 이장
김기훈은 1987년 청주사대 역사교육과에 입학하여 1학년임에도 불구하고 청주사대 수호투쟁에 앞장서 싸우다 유기정학을 받은 이후 학교와 조국에 대한 사랑이 더욱 깊어갔다. 그는 또한 꾸미지 않은 소탈한 모습과 성실하면서도 소박한 생활로 과내에서 많은 동료 및 선후배로부터 신뢰를 받았다. 그러한 신뢰를 바탕으로 1988년 통일선봉대에 참가하면서 투쟁의 의지를 다져나갔고, 1989년에는 제20대 총학생회 사회부장을 역임하면서 많은 집회들을 선두에서 이끌었다.
학원민주화투쟁 기간에는 7일 간의 노천단식으로 몸에 이상을 느꼈으나, 단식을 끝낸 후 병원에 입원하여 진단을 받는 투철한 책임의식을 보여 주었다. 또한 농활위원장으로 일할 때 김기훈의 병이 심각한 상태였음에도 쓰러질 때까지 약을 먹어가며 농활을 지도했다. 결국 김기훈은 1989년 2학기 투병생활에 들어가 1990년 9월 15일 동료들의 비통함을 뒤로 한 채 눈을 감았다.
“내 평생 사랑하는 벗이여
슬퍼 눈물흘리지 말게나
나 비록 짧게 살다 가지만
나 심지있게 살지 않았나
벗이여, 내 죽은 몸뚱이 위로
깃발을 덮어다오
하나는 南의 깃발, 또 하나는 北의 깃발
남북의 깃발을 모두 덮고서
그 위로 기름뿌려 불을 당기면
나와 남과 북은 불길로 사라지고
남북을 가로막던 이질과 적대도
그 불길에 타서 다 사라지면
내 죽은 원혼은
봇물트인 남북을 왕래하면서
배시시 배시시 웃지 않겠나
그래도 남북이 막혀있다면
나 죽어서도 소리치리라
쓰레기들아!
앞잡이들아!
모오든 이방인들아!
이 한반도를 떠나가거라
벗이여
눈물 대신 깃발을 덮어다오
덮고 또 덮어다오
찬란한 조국통일 새날을 위해“
- 김기훈의 유작 時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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