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장자 상세 내용


성명

최태욱


민주화운동내용

노동민주화 운동


사망일자

1990년 07월 14일


나이

22세


직업

노동자


관련자인정

2002/02/25 (38차)


민주화운동 내용

1. 약력

1968년 9월 16일 경북 청도 출생

1981년 2월 중앙국민학교 졸업

1984년 2월 모계중학교 졸업

1986년 9월 이서고등학교 중퇴

1988년 방위병으로 복무(대구 동국 염공 1년 6개월 근무)

1990년 2월 경북 청도읍 무등동 소재 ‘주신기업’ 입사

1990년 5월 14일 1차 해고, 노동조합 결성, 노조위원장 선출

1990년 5월 20일 원직복직

1990년 5월 30일 2차 해고

1990년 7월 8일 청도 천주교 성당에서 분신

1990년 7월 14일 청도 대남병원에서 입원 치료 중 사망

1990년 7월 28일 장례 후 경북 경산 금곡 장미공원묘역 안장

2. 민주화운동 내용

최태욱은 1990년 2월 14일 경북 청도읍에 소재한 런닝셔츠 군납업체인 ‘주신기업’에 입사했으나 5월 14일과 30일 두 차례에 걸쳐 사측으로 해고통보를 받았다. 당시 주신기업 노동자들의 월급은 법정 최저임금인 168,000원도 채 되지 않았고 또 그마저도 사측은 체불을 일삼고 있었다. 이에 최태욱은 사측에 임금체불에 대해 항의하였고 회사로부터 즉시 부당해고(1차) 통보를 받게 되었다. 이에 노동자들은 민주노조를 결성, 최태욱을 노조위원장에 선출하였다. 노조 신고필증이 발급되면서 최태욱의 해고는 철회되었으나 1990년 5월 30일, 사측은 노동자와 상의도 없이 일방적으로 최태욱을 비롯한 조합원 14명만으로 근무조를 편성하여 무급 야간근무를 지시하였다. 최태욱과 조합원들은 이를 부당 노동행위로 간주하고 항의 차원에서 퇴근을 감행하였고 사측은 이를 빌미로 최태욱과 조합원 전원을 징계위원회에 회부하여 해고(2차)하였다.

당시 독실한 천주교 신자였던 최태욱은 해고사건을 계기로 노조가 와해되고 해고된 노동자들이 그에게 생계의 어려움을 호소하자 심적 고통에 시달렸고 본당 주임신부와 면담하면서 죽고 싶다며 괴로운 심경을 고백하기도 하였다. 당시 주임신부가 그에게 ‘극한 마음을 가져서는 안 된다’고 위로했으나 1990년 7월 8일 오후 6시 5분경 평소처럼 성당에서 저녁 6시 청년미사를 마친 뒤, 친구에게 주임신부에게 전해달라며 유서를 맡기고 신도들이 보는 성당 앞마당에서 ‘노조탄압’과 ‘해고자 복직’ 등의 구호를 외치며 분신하였다. 그는 신도들에 의해 즉시 청도 대남병원으로 옮겨져 입원 치료를 받게 되었으나 치료 중이던 같은 해 7월 14일 새벽 2시 15분 90세의 노모와 처자식을 남겨둔 채 꽃다운 22살을 일기로 안타깝게 사망하였다. 그는 화상으로 인한 극심한 고통 속에서도 "후회하지 않는다. 다시 태어나도 노동운동을 할 것"이라고 말하는 등 끝까지 민주노조 사수에 강한 의지를 내비쳤다.

3. 열사 관련 기록

“어버이날이다. 마음 속의 간절한 효성의 마음을 실천에 옮기는 사람이 되자. 2월 23일날 운전면허증을 따고 3월 14일 부터 청도읍 무등동 (주)주신기업이라는 봉제공장에 취직해서 다니고 있다. 많은 보수는 아니지만 일이라는 자체를 감사히 하고 있으니까 참으로 고맙다.(자신에게) 회사에 노조가 필요한 것 같아서 내가 직접 나섰다. 대구에 가서 관계되는 곳으로 가서 조언을 듣고 10일날 저녁에 청도에서 만나기로 약속했다. 오늘 875에서 노조에 관심을 가지는 15명과 회합을 했다. 그 사람들의 공통된 의견이 "노조에 대해서 너무 모르니까 10일 날 다 같이 만나서 얘기를 들어보고 행동하자" 이런 얘기였다. 대구에 전화해서 그렇게 약속을 했다. 그런데 대구 측에서는 비밀누설을 많이 걱정하고 있었다. 사실 나도 모든 사람들(오늘 참석한 이)을 다 믿고 있지만 밤 말은 쥐가 듣고 낮말은 새가 듣는다는 데 제발 비밀이 지켜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꼭 그렇게 되어야 한다. 그리고 성당에도 평일미사에 매일 참석하고 있다. 혼배성사는 보지 않아서 성체성사도 보지 못하고 있다. 혼배성사도 올리고 광민이 엄마도 같이 성당에 나가서 고백성사도 보고 해서 착실한 크리스찬이 되겠다. "주여, 저의 기도를 들어주소서." ”

- 1990년 5월 8일 최태욱 열사의 일기 중 -

“목이 메인다. 자신을 생각만 해도 눈알이 뿌옇게 흐려온다. "십자가의 주여! 왜 제게 이런 시련을 안겨 주십니까? 제가 겪어야만 될 고통입니까? 하지만 제가 감당해 내기엔 너무나 벅찹니다. 한마디로 자신이 없습니다. 전에는 불쌍해 보이던 용만이형이 오늘 보니까 애처로와 눈물을 보일뻔 했다. 그렇게 어렵게 벌어서 모든 돈으로 나에게 술 사주겠다며 26일 아침에 올라오라고 한다. 고개를 똑바로 들 수가 없었다. 이젠 혼자다. "수많은 불면의 밤을 지새우면서도 홀로서기를 익혀야 한다."

그래 태욱아! 철저히 혼자라고 생각하고 스스로 행동해라! 너에겐 누구의 도움도 필요치 않아! 스스로 일어설 수 있을 거야! 이 사회에 혼자 내 팽개쳐졌다고 생각하고 열심히 해 봐! 그래도 자신이 없다. 솔직히 너무 힘이 없다. 기댈 곳이 없다. 주님께서 위안과 힘이 되어주긴 하지만 내가 버텨나갈만 하지도 못하다. 나의 신앙이 두텁지 못해서인 것 같다. 죽임과 죽음을 생각해 본다. 세상에는 답이 애매한 그러한 물음이 너무 많다. 주여! 언젠가는 당신을 거역할 것 같군요. 용서 하세요.“

- 1990년 7월 6일 분신 이틀전 쓴 최태욱 열사의 마지막 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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