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8년 10월 5일 전북 정읍 출생
1987년 단국대학교 천안캠퍼스 법학과 입학
1987년 ‘서도회’ 서클 가입, 활동
1987년 ‘호남향우회’회장 역임
1987년 ‘동학운동사 연구회’가입, 활동
1988년 1학기 가정형편으로 휴학
1988년 5월 17일 교내 광주영령 추모식에서 광주항쟁 성명서 낭독
1988년 5월 18일 시계 탑 앞에서 11시경 분신
1988년 5월 26일 한강 성심병원에서 분신 9일 만에 사망
1988년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 안장
최덕수는 1968년 정읍에서 가난한 농민 최종철의 4남 중 막내로 태어나 배영고를 졸업, 단국대학교 천안캠퍼스 법학과에 입학해 ‘서도회’ 동아리 활동, ‘호남향우회’ 회장을 역임하였고 ‘동학운동사 연구회’에 가입하여 활동하였다.
그러던 중 1988년 5월 18일 오전 11시경 최덕수는 “광주항쟁 진상규명”, “국조권 발동”을 외치며 단국대학교 천안캠퍼스 시계탑 앞에서 자신의 몸에 불을 붙이고 분신했다. 그는 병원에서도 “광주는 아직도 살아있다”, “나는 괜찮으니 돌아가서 투쟁하라”고 동료에게 당부하며 분신 9일 만에 사망했다.
빛고을이라 일컬어지던 광주가 하루아침에 핏고을로 변해버렸으며 우리의 영원한 우방이라고만 가르친 미제국주의는 만행을 묵인, 방조의 단계를 넘어 동조를 한 것이다.
나찌의 유태인 학살에 가슴이 찢어졌다는 무수한 리버럴리스트의 나라 미국은 어째서 80년 한반도의 광주학살에 동조한 것인가? 이러한 행위를 한 우방은 누구의 우방인가?
그것은 분명하다. 독재정권의 우방임이!!! 예속적 독점재벌과 폭력적 살인군부정권, 그리고 외세 이것은 지난 80년 광주민중항쟁과 민주화투쟁을 통해 확인된 한국현대사의 큰 장애물이다.
역사는 이것이 바로 잡혀야 할 시기에 바로 잡혀야 하며, 그 시기를 놓치면 빗나간 역사는 보다 더 큰 희생과 제물을 요구하게 될 것이다.
일제의 강점으로 자주적인 발전의 터전을 철저히 유린당한 이 땅에서 80년 광주민중들이 보여줬던, 한반도에 존재하는 반동세력의 실체에 대한 정확한 깨달음과 진정한 민주화를 위해서는 반역사적인 집단과 가차 없이 싸워서만이 이길 수 있다는 투쟁의 정신이 우리가 광주민중항쟁에서의 얻은 값진 교훈인 것이다.
이제 80년 이후 살아있다는 이유만으로도 먼저 가신 이들에게 크나 큰 빚을 진 우리는 뜨거운 마음으로 반동세력과의 계속적인 투쟁을 전개해 나가야 할 것이다.
광주항쟁 비리주범 노태우를 처단하자!
오월항쟁 계승하여 군부독재 타도하자!
광주민주항쟁 진상규명을 위한 국정조사권을 발동하라!
1988. 5. 18. 호남향우회 회장 최 덕 수
- 최덕수의 성명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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