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장자 상세 내용


성명

정법영


민주화운동내용

노동·빈민생존권투쟁


사망일자

1978년 07월 08일


나이

18세


직업

대학생


관련자인정

2004/04/20 (103차)


민주화운동 내용

1. 약력

1960년 6월 20일 충북 청원군 출생

1973년 7월 청주시청 청소부들의 근로조건개선 및 임금인상투쟁 운동 참여

1975년 1월 20일 청주 주성중학교 졸업

1977년 청주신학대 입학, 수원 아카데미하우스에서 노동문제 강의를 듣는 등 산업선교에 관심

1978년 3월 17일 청주도시산업선교회에서 신흥제분, 조광피혁 노동자들과 농민문제 도시빈민 문제 등으로

150일간 장기 농성, 공안기관의 극심한 감시와 탄압 받음

1978년 6월 25일 귀가 후 이상한 언행을 하기 시작하며 정신에 문제가 생김

1978년 7월 8일 공권력의 지속적인 감시, 위협에 의한 장기간 심리적 억압으로 의문의 죽음

- 청원군 옥산면 호죽리 안장

2014년 5월 20일 민주화운동기념공원 민주묘역 이장

2. 민주화운동 내용

1978년 3월 청주지역에서 노동자들은 퇴직금문제로 장기적인 농성을 전개하게 되었고, 농민 소작인 중 한 사람이 토지를 매입하려는 과정에서 뭇매를 맞고 숨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이에 노동자와 농민들은 단식 농성으로 맞서 투쟁했고, 정법영도 같이 투쟁에 참여하면서 경찰의 집중적인 표적이 됐다. 이러한 민중생존권 수호를 위한 과정에서 113일이 경과되도록 문제 해결이 안 되자 심리적 갈등을 겪던 정법영은 정체불명의 친구들과 만나게 되는데, 1978년 7월 4일 정체불명의 친구들과 만난 후 돌아와 이상한 언행과 심각한 정신적 이상 증세를 보인다.



아버지에 대한 계속된 감시와 탄압, 일을 잘 돕지 못하는 데서 오는 자책감 등으로 인하여 괴로워하던 그는 병원에 입원 치료를 받았으나, 5일간 혼수상태에 빠져 있다가 7월 8일 사망했다. 정법영의 부친 정진동 목사는 1972년경부터 청주 도시산업선교회 활동을 했는데, 청주시청 청소부들의 퇴직금 인정, 4·19혁명 시국성명 발표 등의 활동을 했다. 이로 인해 전담형사가 지정되어 동향을 파악하고 중요한 집회가 있을 때에는 일대일 감시를 당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결과 전담형사들은 정법영에게 접근해 아버지의 정보를 확보하려고 했고, 이러한 과정에서 만 18세의 나이로서는 감당하기 힘든 정도의 심리적 압박을 받은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3. 열사 관련 기록

1978년 5월 5일



오늘은 오랜만에 아버님을 만나 이야기했다. 존경하는 아버님이다.

한 아버지로서가 아니라 한 인간으로서 존경한다. 진실로 이것은 나의 전부이다.

인간으로서 가장 어렵고 힘든 일을 그는 불평 없이 해나간다.



당신은 비록 가정에 풍요한 만족감을 주지는 못하지만 그이는 돈 많은 사장보다 그 어느 지성인이라 자부하는 자와 아니 그 누구와도 견줄 수 없는 훌륭한 인격자요 지성인임을 지니고 있는 당신을 난 항시 존경합니다. 전 당신을 깊이 생각해 볼 때 마음의 갈등이 수없이 오곤 합니다. 한 인간의 목적된 삶의 영위 또한 그 가치관 같은 것을 생각하면 미숙한 전 울고만 싶습니다. 여하튼 언제나 당신을 생각하면 그저 고마울 뿐입니다. 그리고 당신께 감사드리고 기도합니다. 당신을 위해서 말입니다.



- 정법영의 일기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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