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9년 12월 15일 경남 마산 출생
1982년 8월 육군 병장 만기 제대
1984년 5월 대우중공업(現두산DST) 2공장 특수생산부 근무
1986년 5월 산재로 창원병원 입원, 노조활동 시작
1987년 2월 대우중공업 임금동결항의 ‘중식거부투쟁’ 참여
1987년 2월 민주노조 건설 위한 활동가 모임 참가, 대의원·지부장선거 준비
1987년 5월 노조 대의원·지부장 선거(회사측 후보가 당선)
1987년 5월 28일 대의원 매수공작을 확인하던 중 사측 대의원과 폭행사건 발생
1987년 6월 8일 근무 중 폭행사건 합의를 위해 외출 나간 뒤 실종
1988년 3월 2일 불모산에서 유골로 발견
2010년 9월 양산 솥발산 열사묘역 안장
1984년 대우중공업 창원공장에 입사한 정경식은 1987년 2월 사측과 어용노조가 임금을 동결하자 이에 항의하여 동료 노동자들과 함께 대우중공업 사상 최초의 집단행동인 '중식거부투쟁'을 전개하였다. 정경식은 이후에도 민주파 활동가 모임 등에 참석하여 민주노조 건설을 위해 열정적으로 활동하였다. 정경식은 '노조민주화 추진위원회'에 참여하였고, 1987년 5월, 노조 대의원 및 지부장선거를 앞두고 민주노조파 대의원 후보를 당선시키기 위해 많은 노력을 하였다. 그러나 사측으로부터 매수된 대의원들로 인해 민주노조파 후보가 낙선하게 되자 정경식은 사측과 어용노조를 향해 불법 선거개입 의혹을 강력하게 제기하였다.
이후 정경식은 선거과정에서 불거진 일련의 의혹들을 논의하고자 상대편 대의원 이○○을 만나 대화를 나누던 중 예기치 않게 폭행시비에 휘말리게 되었다. 이○○의 고소로 상해사건에 연루된 정경식은 경찰로부터 출석요구서를 받았고, 6월 8일 근무 도중 외출에 나선 뒤 이내 행방불명되었다. 그리고 실종된 지 9개월만인 1988년 3월 2일, 안타깝게도 대우중공업 창원공장 인근에 있는 불모산 기슭에서 유골로 발견되었다.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 결과, 사측이 창원공장의 화장실 낙서를 사건화 하여 5월 지부장 선거에서 어용후보의 당선에 유리한 조건을 조성하려 했고, 회사 이해에 가까운 지부장 후보를 내세우고 민주노조파 후보를 지지하던 대의원들을 매수 및 회유하여 선거결과를 왜곡시켰다는 사실이 확인되었다. 또한 1987년 2월경 회사 측의 임금동결 결정에 항의하는 중식거부투쟁에 대해 보안사가 주동자 색출활동을 한 점, 정경식과 이○○ 간의 폭행사건이 회사에 지속적으로 보고된 점, 창원경찰서 백○○ 형사가 이○○의 행적 관련 참고인 진술서를 대필하였고, 이○○이 제출한 고소장이 창원경찰서에서 작성된 점, 유골이 발견된 토양에 사체 부패 이후 발생하는 토양변화가 보이지 않았고 목을 매었다는 끈에서 혈흔반응이 없었다는 점 등의 의혹이 제기되었다.
민주화운동보상심의위원회는 이 의혹에 대한 조사를 거쳐 정경식을 사망에 이르게 한 일련의 행위들을 종합하여 권위주의적 통치에 의한 사망으로 민주화운동 관련성을 인정하였다. 정경식의 장례는 그가 사망한 지 23년만인 2010년 9월 8일~9일 경향신문사 앞에서 민주노총 주관으로 치러졌다. 그동안 마석 납골당에 안장되었던 그의 유해는 창원 종합운동장에서 열린 노제를 시작으로 그의 고향집과 그가 몸담았던 두산DST(구 대우중공업)를 차례로 거친 뒤 경남 양산 솥발산에 있는 열사 묘역에 안장되었다.
...무엇보다도 저는 이제라도 우리 경식이를 해친 사람이 양심선언을 한다면 죽은 경식이가 살아오는 것은 아니지만, 그렇게만 된다면 경식이의 영혼도 위로해주고, 편안하게 장례도 치러줬으면 하는 것이 가장 큰 바람입니다. 경식이를 해친 사람이 나타나기만 하면 저는 그 사람을 처벌하기 보다는 이제는 그 사람하고도 화해하고 싶고, 모든 것을 용서해 주고 싶습니다. 저의 바람은 하루속히 모든 진상규명이 이루어져서 경식이가 편안하게 눈을 감고 쉴 수 있었으면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경식이를 사랑하는 이 어미의 마지막 소원입니다.
- 2000. 6. 8. 의문사진상규명위원회 조사과정에서 어머니 김을선 여사의 진술 중 -
어머니는 “가거라, 좋은데 가거라, 미안하다, 편히 쉬라, 노동자의 밑거름이 되거라, 경찰이 우리 집을 하루에 두 번씩 왔다. 내가 안 뺏길라고 창고에 열쇠 채워놓고 다녔다. 내가 장사나갔을 때 빼내가면 어쩌나 싶어서. 장사 갔다와서 창고 열어 촛불 켜주고 과일 놔주고 그랬다. 내가 니 지켰다. 내 아들 야무지고 야무져 이리 될 줄 몰랐다. 경식아 노동자의 밑거름이 되거라”며 아들의 마지막 가는 길이 노동자의 새로운 해방의 길로 이어지기를 염원했다.
- 23년만에 치러진 장례식 중 <노동과 세계> “노동해방 불꽃 정경식 열사여! 편히 가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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