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장자 상세 내용


성명

장이기


민주화운동내용

예비군훈련 중 전두환정권 반대


사망일자

1986년 03월 16일


나이

33세


직업

무직


관련자인정

2001/05/29 (20차)


민주화운동 내용

1. 약력

1953년 1월 24일 충북 청주 출생

1979년 청주대학교 경영학과 졸업

1986년 3월 안양 박달예비군 훈련장에서 훈련 중 전두환 정권을 옹호하는 시국 훈화에 대해 반박하고 전두환의 사진을 짓밟아 교관들에 의해 폭행당한 후 수사기관에 이송

1986년 3월 14일 구타로 위독한 상태에서 가족에게 인계됨

1986년 3월 16일 병원에서 사망

- 화장

2014년 5월 26일 민주화운동기념공원 민주묘역 이장

2. 민주화운동 내용

장이기는 1979년 청주대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형의 의류상을 도와주며 부모님을 봉양하였다. 그는 사회전반에 관심이 많았고 특히 당시 전두환 정권의 권위주의 통치에 대해 비판하는 글과 나름의 민주화 방안 또는 개헌에 관한 글을 써서 각종 신문사나 정당에 보내기도 하고 광주학살 전두환에 대한 처단을 주위 사람들에게 이야기하기도 하였다.

그러던 중 1986년 3월 5일 안양 박달교장 예비군 훈련장에서 전두환 정권 극찬에 대한 내용의 정신교육에 대하여 항의, 반박하고 당시 참여하고 있던 예비군을 향하여 ‘정권탈취야욕에 불타 광주시민 수천 명을 학살한 전두환을 처단하자’라고 외쳐 많은 참가자들이 함성을 지르기도 하였다.

장이기는 즉시 군에 체포되어 군 수사기관으로 실려가 군 수사기관의 가혹한 폭행 속에 조사를 받았다. 민간인 신분이었으므로 다시 남부경찰서로 이첩 유치장에 수감되었다. 어디에 있는지 확인조차 안 되던 상황에서 가족들은 3월 14일 서울 남부경찰서에서 연락을 받고 나서야 만날 수 있었다. 이미 생명이 위독한 상황이었으므로 병원으로 후송하였으나 3월 16일 사망하였다.

3. 열사 관련 기록

“3월 초에 박달예비군훈련장에서 정신교육시간에 교관이 86, 88을 들먹이면서 89년에 개헌을 해야 한다는 정부와 민정당의 정책을 선전하며 ‘86년 개헌을 주장하는 사람은 빨갱이다’라고 억지연설을 했다. 참다못한 장이기씨가 큰 소리로 항의하자 교육을 받던 예비군들이 이에 동조하여 ‘와!’ 하는 함성과 함께 박수를 쳤다. 그러자 교관은 분풀이를 위해 방위병들에게 장씨를 끌어내게 하여 폭행을 가한 후, 수도방위사령부로 넘겼다. 보안사에서는 사상이 의심스럽다며 갖은 폭행과 고문을 당했다. 참다못한 장씨가 전두환 사진을 떼어내 부숴버리며 맞서자 그들은 무자비하게 집단폭행을 가했다. 3일 동안 계속된 폭행과 고문 끝에 실신하자 (이때 이미 장파열로 죽어가고 있었음) 예비군훈련이 끝났으므로 민간이라고 남부서로 넘겼다. 남부서는 상태가 심각하여 세브란스병원에 입원시켰으나 이미 늦었다는 의사의 말대로 사망하고 말았다 ... 보안대의 잔인한 폭력에 헌 오라기의 지푸라기도 잡을 수 없는 지하실 방에서 억울하게 죽어간 장이기씨의 죽음은 과연 이 나라의 현실이 어떠한지에 대해 처절하게 증언하고 있다.”

- 당시 언론보도 기사 중 -

[민주화운동기념공원]
17406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공원로 30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16029 경기도 의왕시 내손순환로 132
T.031-361-9500 F.031-361-9576

© 민주화운동기념공원. ALL RIGHTS RESERVED.



[민주화운동기념공원] 17406 경기도 이천시 모가면 공원로 30 T.031-8011-9710  F.031-8011-9709

[민주화운동기념사업회] 16029 경기도 의왕시 내손순환로 132 T.031-361-9500  F.031-361-9576 

© 민주화운동기념공원. ALL RIGHTS RESERVE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