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2년 6월 8일 서울 출생
1981년 서울 한성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사학과 입학
1983년 학내시위 주도로 장기간 수배
1984년 학원 자율화 조치로 재입학
1985년 고려대 졸업
1987년 인천 신흥목재(우아미 가구)에서 활동 중 해고
1989년 인천 목재 노동자회 실무자로 활동
1990년 인천지역사회운동연합(인사연) 회원으로 활동
남부 노동반 반장 ‘인사연’ 제8차 정기총회 준비위원
1991년 6월 27일 사망
- 용인 가톨릭묘지 안장
2014년 4월 26일 민주화운동기념공원 민주묘역 이장
1991년 분신이 있따랐던 ‘5월 분신정국’ 이후 6월, 광역의회 선거가 민자당의 압승으로 끝나고 민중운동에 대한 탄압이 증가되던 시기였다. 이 시기에 인천 동서식품에는 1000여명의 경찰을 투입하여 노동자들을 폭력적으로 연행하였고, 안산의 동영 알루미늄에는 400여명의 경찰을 투입하여 강제해산시켰다. 또한 26일 인하대 총학생회장이 교내에서 불법적으로 강제 연행되었고, 27일에는 인천대에 160여명의 백골단이 투입되어 학생들을 폭력적으로 강제 연행하던 중 학생들에게 중상을 입히는 만행을 저질렀다.
유재관은 재학시에는 전두환정권 반대 시위 등 민주화운동을 지속했고, 졸업 후에는 노동현장에 투신하여 민주노조 결성과 노동민주화 운동을 위해 헌신하였고, 사망 당시 열악한 노동조건의 사업장이 모인 인천지역에서 인천지역사회운동연합(인사연) 회원으로 적극적인 활동을 하고 있었다. 당시 인천지역사회운동연합(인사연)에서 정기총회를 준비하던 회원들은 새벽 1시 50분경 인천대 공권력 투입소식을 접하고, '인사연'도 침탈당할 것이라는 판단으로 급히 사무실을 나오다가 유재관이 3층 유리창을 열고 뛰어내렸으나 실족하여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급히 병원으로 옮기던 중 사망하였다.
“산이라면 넘어주자. 물이라면 건너 주자.
넘고, 건너 노동해방의 새 세상을 맞이하자.
죽음을 피할 수 있는 죽어가는 것은 그 목적이 숭고하기 때문이다.“
- 유재관 열사가 남긴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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