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장자 상세 내용


성명

원태조


민주화운동내용

노조민주화 투쟁


사망일자

1990년 09월 18일


나이

37세


직업

노동자


관련자인정

2004/06/15 (109차)


민주화운동 내용

1. 약력

1953년 7월 7일 마산시 출생
1989년 금강공업(주)에 입사
1990년 8월 10일 노조 결성 시 후생복지부장으로 추대
1990년 8월 30일 경찰의 폭압적 진압에 의해 전신 80% 화상
1990년 9월 18일 오전 6시 30분경 운명
- 부산 백운묘지 안장

2. 민주화운동 내용

원태조는 안산시의 (주)금강공업 직원으로 노동조합 결성 시 후생복지부장으로 초대되어 회사 측과 노조인정을 위한 협상을 해오고 있었다. 그러던 중 8월 30일 회사 측이 경영부실을 이유로 무기한 휴업공고에 나오자, 노동조합은 농성에 돌입하였다. 사측은 회사의 기자재 반출을 감시하며 30일 오후까지 대치상태를 벌이던 상황에서 노조간부를 업무방해혐의로 고소하고 공권력 투입을 요청하였다. 불과 2시간도 되지 않아 전경이 출동하여 강제해산과 함께 조합원 연행에 나섰다.

경찰은 사측의 휴업 통보에도 불구하고 노조가 농성을 지속하자 조합원들을 에워싸고 점차 포위망을 좁혀오기 시작하였다. 이에 원태조의 동료이자 노조 부위원장이었던 박성호가 생수통에 들어있던 시너를 몸에 뿌린 뒤, 경찰을 향해 “더 가까이 오면 죽겠다”고 외치며 필사적으로 저항하였다. 그러나 경찰이 경고를 무시하고 그에게 다가오면서 무리한 해산작전을 펴던 중 오히려 시너를 주변 조합원들에게 흩뿌려지게 하였다. 이윽고 경찰 측 현장책임자가 라이터를 쥐고 있던 박성호의 오른손을 비틀자 둘 사이에 실랑이가 벌어지게 되었고 그 과정에서 순식간에 불길이 일어나 박성호와 주변에 있던 원태조가 불길에 휩싸이게 되었다. 그러나 경찰은 불을 끄려는 조합원들을 무차별로 구타하고 연행하였다. 그리고 원태조는 한강성심병원으로 옮겨졌으나, 화상으로 인해 9월 18일 사망하였다.

3. 열사 관련 기록

“동지들!

어떻게 하면 이 야만의 시대, 탐욕스런 자본의 전성시대를 끝낼 수 있을까요?

언제쯤 우리는 열사가 꿈꿔왔던, 그래서 자신의 온 몸을 내던져 구현하려고 했던 그 세상을 만들 수 있을까요?

어떻게 하면 우리는 매년 열사앞에서 ‘당신의 길을 걷겠다는, 당신이 못 이룬 꿈을 이루겠다’는 그 약속을, 그 다짐을 지킬 수 있을까요? 동지들 우리는 왜? 1% 안 되는 자본가 계급과 지배계급에게 번번히 밀리고 깨지는 겁니까? (중략)



동지들!

박성호, 원태조 열사가 안산지역민주노조운동의 역사 그 자체이듯 지역의 투쟁사업장 동지들과 함께 투쟁하고 민주노조를 지켜내는 투쟁이 바로 열사들의 뜻입니다. 민주노조의 미래를 만들어가는 것 다름아닌 우리들의 몫, 동지들의 몫입니다.“

- 2012년 9월 10일 박성호, 원태조 열사 22주기 추모사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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