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장자 상세 내용


성명

우종원


민주화운동내용

민주화추진위원회사건


사망일자

1985년 10월 11일


나이

23세


직업

대학생


관련자인정

2004/06/08 (108차)


민주화운동 내용

1. 약력

1962년 5월 5일 경북 의성 출생
1981년 2월 대구 달성고등학교 졸업
1981년 3월 서울대학교 사회복지학과 입학
1983년 11월 학외유인물 배포 사건으로 징역 3년 선고
1984년 4월 특사로 석방
1985년 8월 민주화추진위원회 사건으로 수배
1985년 10월 11일 경부선 영동~횡간 철로 변에서 변사체로 발견
- 마석 모란공원 민족민주열사묘역 안장

2. 민주화운동 내용

우종원은 홀어머니 슬하에서 비록 넉넉하지는 않은 살림이었지만 허물없이 바르게 성장한, 그러나 다정다감하며 때론 유머가 있는 청년이었다. 서울대 재학시절에는 소위 운동권 내에서 중책을 맡아 활동했다. 우종원은 1985년 8월 중순, 예비군 훈련 통지를 받고 어머니가 계시는 고향 대구로 내려가 3주간의 훈련을 받던 중 자신이 ‘민주화추진위원회’(민추위) 사건으로 수배 중이라는 소식을 접하게 되었다. 그러고는 불현듯 1985년 8월 26일 집을 나섰으나 이내 행방불명되었고 안타깝게도 집을 나선 지 두 달 후인 10월 11일 경부선 하행열차 황간역 지점에서 근무 중인 철로 선로반원들에 의해 변사체로 발견되었다.

경찰은 그의 사인을 단순 투신자살로 발표하였다. 그는 발견되기 약 1달 전인 9월 27일 중앙일보 11면에 수배자 명단에 올라 있었다. 시신 발견 당일에는 대구 시경 소속 형사가 대구 집에 어머니를 찾아와 아들을 자수시키라는 요지의 말을 전하기도 하였다. 유가족과 그의 주변 동료들은 우종원이 자살을 할 특별한 이유가 없고 달리는 열차에서 투신한 것에 비해 상처가 거의 없었던 점, 그리고 경찰이 유서라고 주장하고 있는 독서카드의 필적이 우종완의 것이라고 볼 수 없다는 점 등을 미루어 볼 때 자살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하였다.

3. 열사 관련 기록

“우리가 15년 전에 돌아가신 선배열사를 다시 생각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우리들의 대학생활이 80년대와 많이 달라졌다고들 한다. 세상이 많이 좋아진 결과라고도 하고 더 이상 우리들은 선배들처럼 사회의 모순에 대해 발언하고 사회를 바꿔나가기 위해 치열하게 고민할 필요가 없다고도 한다. 그리고 자유와 문화를 말한다. 현재 2000년을 살아가는 우리 대학인의 특권인지도 모른다. 물론 지금도 우리 사회의 본질적인 모순은 그 당시와 변한 것은 별로 없지만 우리들에겐 선배 열사의 치열한 사회의식과 대학인으로서의 사명감 같은 것은 찾아보기 힘든 일인지도 모른다. 열사를 추모하고 정신을 계승한다는 것은 우선은 억울하게 가족을 빼앗긴 가족의 한을 푸는 것에서 시작할 수 있다. 우리를 보며 늘 마음 아파하시던 가장 힘들게 싸워 오셨을 어머니께 이제 열사 추모비 건립과 추모제를 통해서 조금이라도 위안을 드리고자 하는 것이다. 그리고 의문사 진상규명 특별법을 올바르게 관철시켜내는 것으로 나아가야 한다. 이는 모순과 왜곡으로 점철된 한국현대사를 바로잡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 우종원 열사 제16기 추도식을 준비하는 학과 후배들의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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