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장자 상세 내용


성명

양영진


민주화운동내용

노태우정권 반대, 반외세자주 투쟁


사망일자

1988년 10월 10일


나이

21세


직업

군인 (대학생)


관련자인정

2001/07/18 (24차)


민주화운동 내용

1. 약력

1967년 3월 16일 경남 함양 출생
1986년 2월 부산 동래고등학교 졸업
1986년 3월 부산대학교 국문학과 입학
1988년 국문과 학술부장 역임
전방입소거부투쟁
1988년 8월 10일 방위병 입대
1988년 10월 10일 재료관 5층에서 투신, 사망
-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 안장

2. 민주화운동 내용

양영진은 부산대학교에 입학해 조국에 대한 애틋한 사랑과 이 땅의 올바른 문학운동의 활성화를 위해 고민하였다. 학내의 대중적 문예잡지인 「부대문학」을 통해 문학과 운동의 문제를 올바르게 풀어내기 위해 노력했고 조국통일에의 열정을 문학으로 형상화시키기 위한 ‘통일시 공동창작’에도 열정적으로 임했다.

그는 1988년 8·15 남북청년학생회담 성사를 위해 지역 선전부 활동을 가열 차게 전개하던 중 갑작스럽게 군 입대 통지를 받게 되었다. 입대 후 양영진의 의지와는 무관한 군 생활은 그에게 인간의 자주성을 억압하고 체제순응형의 인간으로 만드는 군의 폭력적 지배 방법, 미제국주의에 예속된 한반도의 수탈 구조를 더욱 뼈저리게 느끼게 했다. 양영진은 이러한 고민 속에서 결국 그토록 사랑하던 조국의 품에 실하디 실하게 뿌리박은 진달래가 되고자 ‘조국통일·반미자주·군자주화’를 염원하는 유서를 남기고 1988년 10월 10일 부산대학교 재료관 건물 5층에서 투신 사망하였다.

3. 열사 관련 기록

사랑하는 내 사람들에게



내 나이 올해 스물 둘, 참으로 팔팔한 나이지요. 사랑이 무엇이지, 어떻게 사는 것이 정말 사랑이며 사는 것인지, 건강하게 사는 것인지 알 만한 나이지요.

양키 미제국주의에 의해 분단된 땅, 고통 받고 있는 땅, 창백한 식민지 조국에서 가장 아름답게 살려고 했지요. 투쟁하며 살려 했지요. 그러다가 투쟁 속에서 죽으리라 다집 했습니다. 우리 인간됨을 파괴하는 것들과 맞서서 가장 처절히 투쟁하는 모습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가장 아름답고 소중한 것이라 깨달았기 때문이지요.

마른 버짐꽃이 허옇게 핀 가난의 땅에 고통과 눈물로 살아가는 가족들의 모습, 그 모습을 보면서 자란 저는 한 때, 부와 명성의 유혹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어머니의 고통과 가난을 해결하기 우해서는 무엇이 필요 한지 알았습니다. 이 땅에 사는 구체적 민중들에게 아픔을 안겨주는 모순이 무엇인지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그 모순을 해결하기 위해 투쟁하는 삶, 이 땅 변혁운동에 복무하는 삶, 자주·민주·통일을 내어 오는 데 이바지하는 삶을 살려고 했습니다.

저는 문학을 누구보다도 사랑하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것이 한 때는 가난에서 비롯된 도피와 자족을 저에게 주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것마저 현 체제를 유지시키는 지배이데올로기의 일종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이제 제가 문학을 사랑하는 것은 그것이 이 땅 변혁운동을 수행하는 데 있어 저에게 가장 알맞은 무기이며, 문화운동의 일환으로 할 일이 많기 때문입니다.

올바른 사상에 입각한 조직적 문학운동의 활성화를 위해 여러 동지들과 고민하고, 8·15 남북청년학생회담 성사를 위해 지역선전대 활동에 바쁘던 중 8월 9일 다음날까지 입대해야 된다는 사실을 알았습니다. 저는 그때 조국순례대행진에 참가신청서를 내 놓고 있었습니다. 군부독재가 나의 의지와는 무?게 아니, 상반되게 던져 온 한 장의 소집통지서, 기껏 폭력적 지배방법, 법적 표현에 불과한 소집통지서와 이 조국산천의 검은 얼굴, 돌멩이 하나하나에도 서린 통일의지를 안고 달려갈 조국순례대행진 참가신청서 사이에서 느껴지는 엄청난 감동의 차이를 다만 감내하며 저는 그저 폭력통지서 앞에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북한 동포를 상대로 한 찔러, 베어, 때려, 돌려쳐를 배우고 사격술을 배우고 난 뒤, 저는 해운대의 어느 부대에서 방위병으로 근무를 하게 되었습니다. 제게 떠맡겨진 임무는 방위병으로 M16소총을 들고 탄약 창고를 지키는 일이었습니다. 제가 M16을 들고 밤을 세워 지키는 적은 오로지 현 노태우 파쇼집단의 지배체제였으며 나아가 우리 민족의 철천지 원수로 미제국주의의 한반도 수탈구조였습니다. 저의 총구는 언제나 북한동포, 그리고 남한 민중 구체적으로는 어머니, 형제, 동지들에게 겨냥되어져야만 했습니다.

아 반역의 총구, 패륜의 총구에 의해 저는 가슴에 무수한 총알을 맞으면서 어머니의 편안한 미소 같은 아침햇살이 퍼져오길 발길 돋우어 기다렸습니다. 매일 새벽은 찾아오지만 허한 얼굴로 쓰러지는 그리움만 M16소총의 섬뜩한 느낌에 몸을 떨어야만 했습니다.

군대에서는 자주 인내심을 이야기합니다. 어떠한 극한 상황이라도 참고 견디는 능력을 길러 준다고 합니다. 그러나 따지고 보면 그 인내심의 본질이라는 것은 인간에게 일방적 복종심의 습성을 배양하여 기계적인 현실체념주의 형으로 만들고, 인간이 인간을 학대하고 억압하는 현 노태우 파쇼집단에 가장 잘 순응하는 인간형으로 만드는 것에 있습니다. 인간은 스스로 주인 된 입장에서의 주체적인 사고와 창조적인 노력으로써 어떠한 어려움이라도 깨치고 나갈 수 있는 것이고, 그것들이 역사를 진보시켜 왔고, 인간성의 고양을 담보해 준다고 생각합니다. 그런데 현 남한 사회 내에서 민중의 자주성이 유린당하지 않는 곳이 없겠지만 군대는 가장 구조적으로 인간의 자주성을 억압하는 곳입니다. 인간에게는 자주성이 그 생명 인 바 자주성이 없다면 이미 죽은 목숨이나 마찬가지입니다. 따라서 현 노태우 파쇼집단과 미제국주의 놈들은 가장 뜨거운 피와 순수한 열정을 가진 수많은 젊은이들을 합법적(?)으로 대량 살인을 자행하고 있는 것입니다.

오로지 이 땅 민중의 고통과 신음소리로써만 그 놈들은 존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민주의 투쟁으로 신음소리가 피 터지는 구호로 전화한다면 그 놈들은 이 땅에서 없어질 것입니다. 그렇게 만들기 위해서 이 산천 골짜기마다 붉게 피워 피울음 우는 진달래만큼이나 많은 양의 피가 이 땅에 뿌려졌고 이름도 없이 하얗게 그리움으로 피고 진 꽃 넋들이 지천이었습니다.

이제 저도 이 조국 산하에 실하디 실하게 뿌리박은 진달래가 되려고 합니다. 울컥 울컥 솟는 눈물 해방의 땅에 흘리려 합니다.

인간의 자주성을 말살하는 군대조직 해체하라!!

통일 벽 가로막는 군대조직 해체하라!!

조국통일 가로막는 미국 놈들 물러가라!!

미국 놈들 몰아내고 사람 사는 세상 건설하자!!

미국 놈들 몰아내고 해방의 꽃 잔치 벌여보자!!



통일염원 44년 10월 9일 양 영 진 드림



- 양영진의 유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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