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58년 6월 5일 전라남도 광산군 비야면 출생
1971년 초등학교 6학년 때 공장에서 노동자로 출발
1976년 8월 30일 YH무역(주) 입사
1978년 3월 YH 노동조합 대의원으로 선출
1978년 7월 YH 노동조합 소그룹 ‘차돌이’ 그룹장으로 활약
1979년 4월 13일 YH 노조 폐업철폐 공장점거 농성. 5일 동안(폐업1차 철회함) 후생부 책임담당으로 활약함
1979년 8월 9일 신민당 당사 점거농성
1979년 8월 11일 새벽 2시 2천여 명의 경찰이 ‘101호 작전’에 의해 신민당사에 난입, 강제해산시키는 과정에서 추락사
1989년 마석 모란공원 묘지 조성
김경숙이 근무하던 YH무역은 1975년 5월 노동조합을 결성하였다. 당시 YH무역은 1백만원의 자본금으로 불과 2년 만에 노동자 400여 명, 1년 순이익 13억 원이라는 한국최대의 가발업체로 성장하였다. 그러나 가발산업의 사양화와 자본도피, 무리한 사세 확장, 횡령 등으로 부실해진 YH무역은 회사를 폐쇄하기에 이르렀다. 이러한 YH무역의 폐업에 맞선 YH노조의 120일간의 투쟁과 신민당사 농성투쟁은 민주노조를 파괴하는 악덕자본가와 이를 비호하는 박정희 군사독재정권에 맞서 노동자의 단결된 힘을 보여준 역사적인 투쟁이었다.
YH노조 여성노동자들은 회사 정상화를 위해 노력하다가 최후의 수단으로 정치권과 국민에게 자신의 억울함을 호소하기 위하여 1979년 8월 9일 신민당사에서 농성하였다. 이에 정부는 대화를 통한 해결보다는 강제해산을 선택했다. 그 과정에서 김경숙은 YH노조 여성노동자들이 신민당사에서 농성하던 3일째 밤, 경찰의 폭력진압에 의해 추락사했다. 그리고 이 투쟁은 생존권을 짓밟는 악덕기업주를 처벌하기는커녕 정당한 폐업철회 투쟁을 벌이는 노동자들을 폭력으로 탄압하여 김경숙을 죽음으로 내몬 군사독재정권의 실체를 적나라하게 드러냈다. 뿐만 아니라 이 사건은 부마항쟁으로 이어져 마침내 18년에 걸친 박정희 유신독재정권을 무너뜨리는 도화선이 되었다.
이 세상에 태어났을 때에는 어느 누구나 티 없이 맑고 깨끗한 사람이었다.
집안환경 관계로 인하여 여러 사람들의 차이가 생겼다고 생각한다.
그런데다가 나이 8세가 되던 해 아버지는 갑작스런 병환으로 세상을 떠나시게 되었다. 우리 집의 주인이신 아버지를 잃었기 때문에 어머니는 당장 날품팔이를 하면서 생계를 이어야만 하셨다. 없는 가정에서 어렵게 어머니의 수고로 국민학교를 졸업하게 되었다.
졸업하기 직전 겨울방학 때부터 공장에 취직을 하였을 때 돈에 구애를 받던 나 자신은 이 가난한 우리 가정이 잘 살 수만 있다면 무슨 일을 해서라도 돈을 벌어야 되겠다고 마음을 굳게 먹었다. 내가 배우지 못한 공부를 동생에게 가르쳐서 동생만은 성공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나의 간절한 소원이었다. 그리하여 고향을 등지고 타향에 발을 붙이게 된 것이다.
맨 처음에는 커다란 포부로 꿈을 안고 서울로 왔으나 와서 보니 별것이 아니었다. 고향에서 생각했던 꿈은 이룩할 수가 없었다. 이곳에서 내 힘닿는 데까지 힘써 살아가리라고 다짐했다. 하청공장에 취직을 하여 말만 듣던 철야작업을 밤낮 하면서 약 2개월은 나의 코를 건들지도 못했다. 너무나 피곤하다 보니까 끊임없이 코피가 나는 것이다. 나의 몸은 더욱 약해지고 얼굴은 창백해졌다. 어떤 회사에서는 봉급을 약 3개월 치를 받지 못했다. 헐벗고 굶주리며 풀빵 5원짜리를 30원어치로 추위에 허덕이며 생계를 이어가기도 했다. 이렇게 사느니 차라리 자살이라도 해버리려고까지 마음을 먹었으나 고향이 그 길을 막았다. 하청공장에서는 작업관계로 일요일이 없었다. 그리하여 어쩔 수 없는 경영부실로 인해 여러 차례 회사를 옮기게 되었다.
젊고 싱싱한 나이에 우리의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공장안에서 여러 형태의 억압을 받으며 허리 한 번 제대로 펴지 못하고 살아야 하는 것이 안타깝기만 하다. 혼탁한 먼지 속에 윙윙대는 기계소리를 들으며 어언 8년 동안 공장 생활하는 나 자신을 볼 때 남은 것은 병밖에 없다. 몸은 비록 병들었지만 마음은 상하지 않는 인간으로서 올바른 삶을 살리라 다짐한다. 객지에 나와 있는 외로운 우리들에게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함께 계시니 이제는 두렵지 않다. 나와 같은 처지에 있는 사람들을 위하여 열심히 살도록 두 손 모아 간절히 기도하련다.
현실은 어려워도 주님의 자녀로서 나를 잃지 않고 살아가며 태양과 같은 밝은 등불이 되리라.
- 김경숙 열사의 유고글 「생활의 발자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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