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장자 상세 내용


성명

길옥화


민주화운동내용

교육민주화 운동


사망일자

1993년 09월 26일


나이

31세


직업

교사


관련자인정

2003/05/28 (68차)


민주화운동 내용

1. 약력

1962년 8월 29일 강원 원주 출생

1985년 서울대 졸업

1985년 3월 중화중학교 임용

1989년 3월 1일 신양중학교 전출

1989년 평교사협의회 활동

1989년 8월 17일 전교조결성 관련 해직, 참교육활동

1989년~1993년 서울시 동북부지회 편집위원

1993년 6월 24일 정부 선탈퇴 후선별 복직방침발표, 이에 심한 거부감과 모욕감으로 고민

1993년 9월 26일 춘천에서 투신하여 사망

2014년 9월 20일 민주화운동기념공원 민주묘역 이장

2. 민주화운동 내용

길옥화는 서울대학교 사범대 국어교육과 졸업 후 1985년 중화중학교에 임용되어 근무하였고, 1989년 3월 1일부터 서울 신양중학교 국어담당 교사로 재직하면서 평교사협의회를 결성하여 활동하였다. 이후 임의단체인 전국교사협의회(전교협)이 그 한계를 절감하고 조직 형태를 노동조합으로 바꾸게 되자, 1989년 6월 16일 신양중학교 학생부실에서 개최된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신양중학교 분회결성’에 참여하였다가 이와 관련하여 해직을 당하였다.

길옥화는 해직 이후에 심한 생활고에 시달리면서도 참교육실현과 교육민주화를 위해 전교조 서울동북부지회에서 지회보 「올푸름」의 편집위원으로 유인물을 제작하면서 전교조 활동을 계속하였다. 그러던 중 1993년 전교조 탈퇴를 전제로 한 정부의 해직교사 복직방침이 발표되었고 이에 대한 심한 거부감과 모욕감으로 고민하였으며, 당시 동료교사에게 “우리가 무슨 죄인입니까, 저는 아이들 앞에 떳떳한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습니다.”, “도저히 굴욕감을 참을 수 없습니다.”라고 말하기도 하였다. 결국 길옥화는 전교조 탈퇴각서 시한 이틀 전인 1993년 9월 26일 새벽 2시에 강원도 춘천시 석삼동 소재 삼익아파트 13층에서 투신하여 숨졌다.

3. 열사 관련 기록

“선생님!

어느덧 일년, 이땅에서의 온갖 끄달림에서 벗어나 훨훨 날아가신 그곳에서의 선생님은 지금 어떤 모습인지요

...

故 길옥화선생님!

아직도 이 세상이 노여우신가요. 아직도 우리들을 향해 질타를 던지고 계신가요 ... 여기서 우리는 우리의 절대명제인 참교육을 향해 새롭게 출발하려 합니다. 선생님을 떠나보낸 그 죄를 고스란히 짊어지고, 한 걸음이 아니면 반 걸음씩이라도 쉬임없이 나아가려 합니다. 그 길만이 선생님 영전에 바칠 수 있는 가장 빛나는 헌물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선생님, 이 땅의 모든 오욕은 살아남은 바로 우리들의 몫입니다. 우리는 결코 그것을 회피하지 않을 것이며, 끝내 싸워서 이길 것입니다. 그리하여 이 땅을 어 이상 외롭게 떠나는 영혼이 없는 참세상으로 가꾸어 낼 것입니다.

故 옥화 선생님! 부디 부디 편안하소서!

참교육 6년 9월 25일

전국교직원노동조합 위원장 올림“

- 전교조위원장, “고 길옥화선생님 영전에 올립니다”, 「동부중등2지구 회보」제4호 199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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