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장자 상세 내용


성명

박종만


민주화운동내용

노동민주화운동


사망일자

1984년 11월 30일


나이

36세


직업

노동자


관련자인정

2001/10/30 (30차)


민주화운동 내용

1. 약력

1948년 2월 25일 부산 출생
1968년 서라벌 고등학교 3년 중퇴
1982년 10월 (주)민경교통에 입사
1983년 3월 노조 복지부장으로 일함
1984년 11월 30일 “내 한 목숨 희생되더라도 더 이상 기사들이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해야겠다.” 는 유서를 남기고 분신하여 사망.
1984년 일산 기독공원묘지 안장
2017년 4월 5일 민주화운동기념공원 민주묘역 이장

2. 민주화운동 내용

박종만은 (주)민경교통에 입사하여 노조복지부장을 맡아 택시노동자들의 권익과 노동조건 개선을 위해 열성적으로 활동하였다. 그러던 중 1984년 11월에 회사가 노조 일로 승무를 자주 하지 못한 노조사무장 이○○을 무단결근 등의 터무니없는 구실을 붙여 해고시키는 일이 발생하였다. 이에 노조 간부들과 대의원들이 ‘해고음모 철회’를 요구하며 단식 농성을 결의하고 29일부터 박종만, 배○○, 안○○이 단식철야 농성에 들어갔다.

11월 30일 박종만은 기숙사 숙소로 들어가 배차일지 뒷장에 글을 쓰기 시작했다. “내 한목숨 희생되더라도 기사들이 더 이상 피해를 보지 않도록 해야겠다….” 그러자 동료기사인 안○○이 “무엇을 쓰는 거냐, 괜히 딴 생각 말어.”하였으나 뭔가 이상했다고 한다. 같은 날 11시경, 동료들이 잠깐 자리를 비운 사이에 박종만은 회사 사무실로 들어갔다. 배○○가 “쓸데없는 생각 하지 말어”하고 외치며 사무실 좌측의 창문을 열기위해 사무실을 돌아가는데, 그때 “꽝”하고 문이 열리더니 불덩이가 뛰어 나왔다.

“노동조합 탄압말라! 부당하게 해고된 기사들을, 사무장을 복직시켜라! 부당한 대우를 개선하라!” 신음을 내면서도 그는 중간 중간에 요구조건을 외쳤다. 그러다 결국 오후 8시 30분경 “내가 이렇게 떠나면 안되는데… 아직도… 할 일이 많은데…”라는 마지막 말을 남긴 채 36세의 젊은 생을 마쳤다.

3. 열사 관련 기록

“가슴 속 깊이 뜨거운 맘이 북받쳐 올라 눈가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혀옵니다. 남편이 떠나가신 지 벌써 2년 ...

저는 가신 님의 지극했던 사랑, 아이들의 순종, 많은 동지들의 뜨거운 동지애로 매일 새로운 힘을 얻으며, 우리 모두 손잡고 해방의 기쁨을 나눌 수 있는 그말을 앞당기기 위해 열심히 살아가고 있습니다. 오늘 이 자리는 당신의 죽음을 추모하는 것만이 아니라 부활을 의미하며 전 노동자의 뜨거움을 한껏 나타내는 것입니다. 또 나에게는 제2의 삶을 의미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

현재 많은 민주인사와 노동자들이 말할 수 없는 탄압을 받고 있지만 결코 무너지지 않고 싸워나갈 것이며 오히려 더욱 더 강철같이 뭉쳐지는 힘만을 키워주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더불어 당신은 영원히 사는 것임을 확신합니다.“

- 박종만의 妻 추도사 중, 1986. 11. 30. 박종만 2주기 추도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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