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장자 상세 내용


성명

박응수


민주화운동내용

군부독재 타도 분신


사망일자

1987년 12월 05일


나이

28세


직업

노동자


관련자인정

2001/01/29 (10차)


민주화운동 내용

1. 약력

1959년 12월 1일 7남매 중 넷째로 출생
대전 계룡공고 졸업
경북 왜관에서 카투사로 군복무
1982년 6월 투라 가구(주)에 입사하여 노동자로 생활함
1987년 12월 5일 대전역 앞에서 분신
1987년 12월 8월 경찰에 의해 충남 대덕군 산내면 하소리에 매장
2014년 5월 20일 민주화운동기념공원 민주묘역 이장

2. 민주화운동 내용

1987년 대통령선거가 종반전에 접어들면서 야권후보 단일화를 요구하는 국민의 시위와 야당 당사 내 농성, 서명운동이 잇따랐다. 12월 5일 박응수는 충남 대전시 중동 홍명상가 앞 광장에서 민주당 청중동원용 버스에 올라타 사람들을 내리게 한 뒤 대전역 광장으로 버스를 몰고 가 경찰과 대치하던 중 “후보단일화 하라”고 절규하며, 버스와 몸에 시너를 뿌리고 스스로 불을 붙여 민주의 제단 앞에 산화하였다.

분신 직후 경찰에 의해 대전 을지병원으로 옮겨졌으나 정권의 재집권에 광분한 군부독재는 영안실 주위를 전경들로 에워싸고 조문객들 에게 위협적인 공포분위기를 조성하였다. 또한 창졸지간에 자신들의 자식형제가 유명을 달리한 비통과 오열 속에서도 박응수의 명복을 온 국민과 더불어 빌고자 민주국민장으로 장례를 치룰 것을 결정하고 준비하던 유가족 장례위원회에 가족장으로 조용히 치룰 것을 종용하였다. 결국은 박응수의 의로운 죽음을 지키겠다고 몰려든 학생과 시민을 향해 최루탄을 난사하며 시신을 강제로 탈취하는 천인공노할 폭거를 자행했다. 경찰은 많은 애국시민, 학생들을 강제 연행하는 등 동지의 유가족들과 강제 분리시켜 12월 8일 밤 10시 30분경 충남 대덕군 산내면 하소리에서 매장을 감행하였다.

3. 열사 관련 기록

“고 박응수 열사는 왜 죽었습니까? 열사는 6월 민주화투쟁 이후 저 도도한 민주화의 대세가 살인군부독재의 완전한 끝장으로 나아가지 못한 틈을 비집고, 오히려 대세를 역류하고 학살범 노태우가 국민을 기만하여 체육관선거를 통한 재집권은 포기한 대신 방법을 바꿔서 집권야욕을 불태우고 있는 것에 대한 분노로 자신을 바친 것입니다. 열사는 한 줌도 안되는 저 살인독재집단이 관권·금전·여론조작을 통한 지방색 조장 등을 통해 민주세력의 이간질과 분열공작 등 부정선거로 재집권하려는 야욕을 온 몸으로 분쇄하기 위해 대동단결 투쟁을 우리에게 호소하며 산화해간 것입니다. 그래서 열사는 스스로 죽은 것이 아니라 전두환·노태우 살인군부독재의 독점과 재집권 야욕에 의해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

- 1988. 2. 8. 박응수 추도식 추도문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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