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장자 상세 내용


성명

박선영


민주화운동내용

전두환정권반대, 학원민주화투쟁


사망일자

1987년 02월 20일


나이

21세


직업

대학생


관련자인정

2001/7/18 (24차)


민주화운동 내용

1. 약력

1966년 11월 20일 전남 화순 출생
1982년 3월 전남여고 입학
1985년 3월 서울교대 수학교육학과 입학(동아리 UNSA 및 수학과 학회 활동)
1985년 5월 서울 청담교회 대학생부 활동
1986년 5월 5.3인천시위, 11.29 신민당 개헌 현판식 투쟁 등 참가
1987년 2월 20일 군사독재타도 및 학원민주화를 요구하며 목 매 자결
1987 광주 망월동 민족민주열사묘역 안장

2. 민주화운동 내용

박선영은 1987년 2월 20일 모교인 서울교대의 반민주적인 학사운영과 전두환 군사독재에 항의하며 유서를 남긴 채 자결하였다. 박선영이 재학 중이었던 당시 서울교대에는 학내에 지하취조실이 있을 정도로 학생들에 대한 학교 당국의 삼엄한 감시가 이루어지고 있었다. 일개 교관이 시도 때도 없이 학생을 불러 취조를 했고, 많은 학생들을 프락치로 만들었다. 이 같은 이유로 대다수의 서울교대생들은 교내가 아닌 외부에서, 혹은 제한적이나마 학내 지하 동아리를 통해, 민주화 투쟁을 전개하고자 하였다.

1985년에 수학교육과에 입학한 박선영도 지하 동아리 UNSA와 수학과 학회를 통해 민주화운동을 전개하였다. 박선영은 자신의 활동에 대해서 함구하고 철저하게 보안을 유지하였다. 그럼에도 어느새 학교 측으로부터 문제 학생으로 지목 받았고, 수업시간에도 수시로 불려나가 취조와 함께 협박을 당하는 처지가 되었다. 설상가상으로 과거 국보위 문공분과 위원장 출신이자 前 문교부차관을 지낸 정○○가 새로운 학장으로 부임하여 동아리 및 학회 해체 조치를 단행하였다. 그동안 힘들게나마 민주화 투쟁을 가능하게 했던 교내의 활동 무대가 사라진 것이었다. 그래서 박선영은 활동 무대를 외부인 서울 청담교회 대학부로 돌려 민주화 투쟁을 계속 이어나갔다.

그러다 2학년 여름방학을 맞아 남달리 효심이 지극했던 박선영은 고향 부모님을 찾아뵈면서 강했던 신념이 일시 흔들렸고, 깊은 심적 갈등과 함께 과감하게 교회의 대학부 활동을 접었다. 그러나 2학기가 개강하자 이내 교회로 돌아와 다시 왕성한 활동을 전개하였다. 그러는 사이에 금세 한 학기가 지나가고 겨울방학이 되었다. 박선영은 병석에 누워 계신 어머니의 병간호를 위해 다시 고향을 찾았고, 다음 해인 1987년 2월 10일이 되어서야 상경하였다. 상경 당시 이미 자결을 결심한 상태였으나, 한 인우의 증언에 의하면 박선영은 2월 13일 친구들과 만난 자리에서도 밝은 모습을 보였다고 한다. 그리고 그로부터 1주일이 지난 1987년 2월 20일, 박선영은 군사독재타도 및 학원민주화를 요구하는 장편의 유서 8장을 남긴 채 목을 매 자결하였다. 당시 학교 측은 박선영의 죽음에 대해 ‘이성관계로 인한 비관 자살’이라고 매도했으나 1987년 6월 교대학생들이 전개한 학내 투쟁으로 진실이 규명되었다. 박선영의 죽음은 이후 서울교대를 비롯한 전국 교대들의 민주화 운동 도화선이 되었다.

3. 열사 관련 기록

“이 땅의 백성들이 자신들의 최소생활 유지를 위한 몸짓마저 모두 빼앗긴 채 죽어가고 있다. 이 한반도에는 외국자본에 의해 더 이상 자립경제가 발붙일 곳이 없어져 가고 있다.”라고 하면서도 민중의 아픔, 나의 본질적인 억압을 멀리하려고, 무관심한 나의 안일이 역겹다.

점점 민중들 그 의미도 잘 모르지만 그들과 함께 하길 꺼려하는 나의 모습을 더 이상 지켜보고 싶지 않아서 가장 못난 길을 택하고 만다.

갈 수밖에 없는 나약함에 서글퍼 하면서.

-박선영의 글 「유서」 내용 중 일부 인용-



87년 2월 21일, 어머니는 돌연 치마를 걷어 부치고 침대 위로 올라갔다. 그리고는 동생의 차가운 몸 위에 사지를 맞대고 엎드려 누웠다.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는 어머니의 얼굴은 엄숙하고 비장했다. 누구도 범접할 수 없는 위엄이 서려있었다. 어머니는 선영이 입술에 자신의 입을 맞대고 천천히 얼굴을 부비기 시작했다. 나직하고 쉰 듯한 목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졌다. "아가......선영아......내 죄여, 내가 잘못했다. 니가 하고 싶은대로 하게 부모가 밀어줘야 썼는디, 니가 생목숨을 끊을 때꺼정 왜 이렇게 몰르고 너를 말겼는가 모르겄다. 아가! 엄마가 약속허께. 니가 허든 일을 내가 허께. 니가 죽은 그 시간에 나는 죽고 니는 살았다. 내 눈에 흙이 들어갈 때까지 니가 허든 데모, 니가 허든 민주화를 내가 허께. 암껏도 걱정 말고 편히 쉬어라. 아가......"

-박선영 추모사업회 "저는 열네 살 선영이예요“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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