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3년 6월 25일 전남 영암 출생
1981년 3월 서울대학교 사회계열 입학
교내 사회과학 서클 현대경제연구회 가입
1982년 3월 서울대학교 지리학과 선택
지리학과 학회장 활동
1983년 학도호국단 총학생회 부회장 활동
1983년 11월 교내에서 학생자율 활동 보장, 교내 경찰 철수 요구 시위 주도로 경찰 연행
1983년 29일 특수학적변동자로 분류되어 강제 징집으로 군 입대
1985년 군 입대 후 소속대대의 강제 징집된 사람들과 모임 주도
구속수감 후 조사과정에서 가혹한 고문
전주교도소 이감 후 교도행정의 민주화 요구하며 단식투쟁 주도
1987년 7월 8일 고문후유증으로 디스크와 악성임파종 발병
2004년 6월 5일 고문후유증으로 고통받다 사망
2014년 4월 26일 민주화운동기념공원 민주묘역 이장
박석중은 1981년 3월 서울대학교 사회계열에 입학하여 이듬해 같은 대학교 지리학과에 전입한 후, 1983년 3학년 재학 중 학도호국단 총학생회 부회장으로 활동하였다. 그는 1학년 재학 당시 교내 사회과학 서클인 현대경제연구회에 가입하여 의식화학습을 통해 학원문제와 한국의 제반 현실에 대해 문제의식을 갖게 되었다. 지리학과로 전입 후에는 학회장으로 당선되어 학내외의 여러 가지 문제점을 깊이 인식하면서 현실비판의식을 강하게 갖고 학생의 위치와 사명에 대해 깊이 생각하게 되었다. 또한 학도호국단 총학생회 부학생회장으로 당선되어 활동하면서 학생운동의 필요성을 많이 인식하던 중, 1983년 11월 서울대학교 교내 일대에서 “학생자율 활동 보장”과 “교내 경찰 철수”를 요구하는 시위를 주도하였다가 관악경찰서에 연행되어 조사를 받았다. 동시에 특수학적변동자로 분류되어 11월 29일 강제 징집되어 군에 입대하게 되었다.
군에 입대한 후에도 소속대대에 특수학적변동자로 분류되어 강제 징집된 사람들과 모임을 주도하였고, 이 활동을 이유로 헌병대에 연행되어 조사과정에서 심한 고문과 가혹행위를 당했다. 1987년 7월 8일 고문후유증으로 디스크와 악성임파종이 발병, 2004년 6월 5일 고통받다 사망했다.
“요즘 무기력 속에서 생활하고 있다. 내 인생에 있어서 최대의 위기인지도 모른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정말 막막하다! ... 앞이 깜깜하다. 먼저 나 자신의 의지가 약해져 간다.
...
시간을 맞이하는 것도 두렵다. 어쩌다 이 지경까지 와버렸는지 모르겠다. 이 슬럼프에서 빠져나오려면 한 동안 시간이 걸릴 것이다.
얼마 전에는 면역체계도 파괴되어 오른손이 뚱뚱 붓고 발가락에 진물이 흐르기도 하였다...“
- 사망 직전 박석중의 일기 중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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